나는 나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코로나19 4차 예방접종 예약이 시작됐다. 매일 수십명의 어르신들이 동사무소로 찾아온다. 오늘도 어떤 어르신 부부가 딸인듯 요양보호사인듯 보이는 사람과 찾아왔다.
"저 다른 일 보고 있을 테니까 예약하고 오세요" 라며 그 중년의 여인은 자리를 비우고 어르신 부부만 남았다. 할아버지는 몸이 다소 불편해 보였고, 할머니의 목소리는-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아주 우렁찼다.
두 분의 예방접종 예약이 끝나고 할머니가 물었다.
"연명치료 안한다고 그 신청은 어디서 하요?"
"....네? 연명...치료요...? 동사무소는 아닌데~ 어디서 할까요? 찾아볼게요."
너무나 생소한 단어를 듣고 인터넷에 '연명치료 거부신청'을 검색해 보니 지정된 의료기관이 있는듯 보였다.
"내 주변에 다 했다 그래서 나도 할라고. OO 근처에서 했다 그런 거 같은디?"
관내에는 의료기관 1곳과 건강보험공단에서 받는다고 되어 있었다. 어르신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본인이 원하는 곳의 주소가 써진 메모지를 들고 나가셨다.
어르신은 왜 연명치료 거부신청을 하려는 것일까. 말릴 걸 그랬나. 그 이유에는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도 있는 건 아닐까. 나도 나이가 들면 어느 순간, 그런 선택을 하는 날이 올까. 나 역시 어르신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될까. 예기치 못한 어떤 죽음의 순간에 내가 나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도 나의 인생이기 때문에 나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일까.
연명치료 거부신청을 말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전혀 슬프지도 우울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왜인지 모르게 하던 일에 전혀 집중하지 못한 채 한없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작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나한테 어떤 존재였냐고 물으면, 이 에피소드 하나로 충분히 설명이 될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나. 국어시험에서 딱 1문제를 틀렸는데, 그 문제는 이것이었다.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 주신 분은 누구인가요?"
내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적은 답은 '할머니'였고, 이 일은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되었다.
8살의 나에게 할머니는 엄마였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의 나이에서도 인생의 8할에는 언제나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어느 날 새벽 갑작스러운 발열과 오한을 견디다 못해 응급실행을 했고, 위장 천공으로 원래는 수술을 해야 하지만 할머니의 연세에 수술을 감당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길어야 3일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할머니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마지막 생의 일주일을 요양병원에서 오로지 진통제와 항생제에만 의지한 채 버텨야 했다. 신체적 고통과 함께 갑작스럽게 다가온 죽음을 스스로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편으로 그 마지막 일주일 동안 나는 다가올 할머니의 부재를 폭풍처럼 겪었다. 닥치지 않았지만 다가오는 닥쳐야 하는 어둠의 그림자에 토해내듯 무너졌다가도 언젠가 막연하기만 했던 부재가 곧 현실이 될 것임을 받아들일 준비를 서서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남은 자의 이기적인 마음은 이러했는데, 할머니의 마음은 어땠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울음을 겨우 참고 이 얘기를 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말간 얼굴로 물었다.
"근데 연명치료 거부 신청이 뭐 그렇게 슬플 일이야?"
공감제로인 남편 덕에 눈물이 쏙 들어간 채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내가 할머니를 생각해서 슬펐던 감정이 연결되어 그런 것이지, 누군가에게는 정말로 한 치 앞도 모르는 나의 인생길에서 잠시 쉼표를 찍고 언젠가는 올 막연한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오늘을 살아냈지만 결국 하루 하루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니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곧 어떻게 살 것인가와도 같은 결이다. 연명치료 거부에 대한 고민을 둘러싸고 많은 부분들이 연결되어 있을 테지만 가장 중요한 선택의 이유는 '나' 아닐까 한다.
나는 나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