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센터에는 총 두 번 근무해 봤다. 첫 근무지와 두 번째 근무지는 꽤 분위기가 달랐다.
첫 근무지는 내가 발령이 났을 때쯤 한창 재개발이 진행됐다. 한 구역이 철거를 앞두고 있었고, 한 구역은 사업시행인가를 받는 초입단계에 있었나, 잘 기억나진 않지만 무튼 재개발 때문에 엄청난 양의 서류를 발급하고, 주소를 이전하지 못하는 사정의 사람들을 냉혈한처럼 거주불명등록 처리해야 했던 했던 끔찍한 기억은 뚜렷하다.
그 동네는 재개발을 앞둔 지역을 포함해 일반적인 주택가가 관할의 2/3를 차지하고 있었다. 10년이 훌쩍 넘은 아파트 포함 총 아파트 단지는 3개뿐이었다. 근무할 당시는 몰랐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대체로 나에게 이질감 없는 평범한 중산층의 분위기였다. 그래서일까, 매년 공시지가 열람에 관련된 공문이 내려오지만 실제로 공시지가를 열람하러 오는 사람은 내가 근무하는 동안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공시지가의 의미도, 그 내용도, 관심을 가져본 적도,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두 번째 근무지에서는 공시지가 열람에 관한 공문이 내려오고 얼마 안 되어서부터 꾸준히 사람들이 와 이의신청과 의견제출을 하고 갔다. 그곳은 공동주택만 스무개 안팎, 시세 10억이 넘는 단지가 꽤 있는 동네였다. 처음에는 그래 의견제출을 하는구나, 동네마다 분위기가 다르군, 하고 말았다. 그런데 오는 족족 공시지가가 올라 세금이 많이 나온다는 둥, '재산세를 덜 낼 방법이 있다면서요?'하고 질문을 하니 도대체 세금과 공시지가가 얼마이기에 이러나 궁금해졌다.
A 아파트 단지에서는 거의 집단행동이다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느낌상 아파트 게시판에 공시지가가 높게 책정된 것 같으니 주민센터에 방문해 의견제출을 하라는 안내문이 붙은 것 같았다. 본인이 뭘 해야하는지도 모른채 일단 오긴 오는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 공시지가 관련이었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는 공시지가가 8억 중반 정도인데, 시세는 14억 중반에서 15억이 넘었다. 의견 제출의 이유는 모두 주변 단지보다 공시지가 상승률이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어 보였다. 아파트의 입지가 좋았으니까.
그 외에 다른 단지에서도 간간이 찾아왔다. 공시지가 8억 중반인 아파트에 사는 어떤 할아버지는 공시지가가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 이미 화가 잔뜩 나서 오셨다. 집 하나 가지고 있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며. 시세를 조회해보니 16억이 훌쩍 넘는 아파트였다. 그 분이 제시한 적정 가격은 더도 덜도 말고 딱 6억이었다. 본인은 재개발 분양으로 들어온 사람이며,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프리미엄을 받고 팔아서 시세차익을 무척이나 많이 남겼는데 자신은 그저 거주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나는 그 할아버지의 사정은 모르지만, 그 동네가 얼마나 험난한 동네였는지만은 안다.
우리 남편은 어릴 적 내가 근무하는 자치구에 살았다. 지금도 시댁은 어릴 적 살던 동네 부근에 산다. 남편 말에 의하면 지금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이 되기 전에는 흙바람 날리는 판자촌이었다고 한다. 본인도 매일 밤 천장에 쥐가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리는 그런 주택가에 살았더랬다. 시부모님은 재개발이 된다고 해서 마냥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조합장이 추가 분담금 1억을 요구했다. 25년 전, 추가분담금 1억이라니. 남편네는 결국 인천으로 이사를 갔다. 그 아파트로는 들어가지 못한 셈이다. 어찌 어찌 당시 아버님 하시던 일이 잘 되어 다시 그 옆에 저렴한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됐지만, 대체로 서울에서 일어나는 재개발이란 그렇다. 재개발 이주민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니까.
30평대 시세 16억짜리 아파트를 임대아파트가 아닌 재개발 일반 분양으로 들어올 수 있는 정도라면. 어느 재개발 지역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지만 특히 그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의 그 동네는 불량배, 부랑자가 많아 근처도 조심하라고 서로 일러주던 그런 곳이었다. 재개발로 인해 오갈 데가 없어진 영세민들은 전기도 수도도 되지 않는 그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빨간 엑스가 곳곳마다 그려진 곳에서 그야말로 '생을 연명'하고 있었다고, 당시 구청 복지과에 일했던 직원이 말하기도 했다.
이제는 외제차가 아니면 주차하기가 부끄럽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상전벽해, 괄목상대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그곳. 첫 근무지에서는 단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외국에서 출생한 자녀의 출생신고가 빈번한 그곳.
어쨌거나 나는 접수창구에 불과하니까 입을 닫고 가만히 이의신청을 받는다. 그리고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공시지가가 대체 뭐길래.
반포 모 아파트의 시세가 27억인데 공시지가가 19억이라는 이야기, 그동안 내가 모르고 살아왔던 이야기들은 검색 몇 번만으로도 널려 있었다. 그렇다면 부모님의 집은 어떤 상황일까. 부모님은 지방의 한 20년이 훌쩍 넘은 아파트에 사신다. 재건축, 재개발 예정지냐 그것도 아니다. 시세가 1억 4~5천했다. 그동안 부모님이 이런 가격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 서울의 원룸, 투룸 가격이나 될 법한.. 어쨌든 떨리는 마음으로 공시지가를 검색했다. 작년에 비해 떨어져서 1억 2천이 못 되는 금액이었다. 이럴 수가 있나. 목구멍에 뜨끈한 것이 울컥 올라왔다.
퇴근 후 나는 콜롬버스가 대륙을 발견한 사실마냥 엄마에게 이 얘기를 쏟아냈다.
엄마는 차분히 얘기를 듣더니,
"우리 아파트가 좀 비싸네"라고 말했다.
"부화를 내서 바뀔 건 아무것도 없어. 네 거가 아닌 거에 너무 힘쓰지 말아라."
엄마는 부처일까. 이렇게까지 세상에 해탈할 일인가. 아니면 엄마가 살아온 세상이, 시간이 그렇게 체념하도록 만들었을까.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된다 해도 그렇게 체념하고 살 수 있을까.
무지했던 나의 삶에 공시지가가 날린 펀치는 꽤나 깊고 묵직했다.
예전 무료법률상담 업무를 담당할 때, 변호사님들이 의뢰인들에게
"무조건 모른다는 말로 모든 걸 다 대처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게 이유가 될 수 없어요."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거 참 단호하시네, 생각했는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꽤나 맞는 이야기였다. 나의 무관심과 무지가 그렇게 해도 된다고 방치한 거나 마찬가지 같았다. 그런데 알았다고 해서 당장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 더 슬픈 일이다. 내 아이가 사는 세상은 조금 달라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