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건네는 인사, 나마스떼
"나마스떼.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시작합니다."
출처 - 픽사 베이
매일 아침 요가원으로 출근한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야 한다. 오늘의 몸상태를 체크하는 순간, 결석이다.
딩동. 4층에서 아침은 시작된다. 복도를 스미는 묵직한 인센스 향을 맡으며 호흡을 시작한다. 오늘도 거의 마지막 순서로 매트를 펼친다. 선생님과 가볍게 눈 맞춤을 한 뒤 모닝 요가 루틴이 시작된다.
팔을 들어 올리고 시선은 하늘로. 어제의 노동이 걷히지 않은 어깨와 목이 뻣뻣하다. 흐---읍, 후--하. 더 깊은 호흡으로 근육의 긴장을 덜어내 보지만 역부족이다.
쉬운 동작에서 고난도 동작으로 갈수록 몸은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진다.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다 보니 이제 정점인 머리 서기 시간이다. 선생님의 티칭에 따라 머리카락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손가락 한마디만큼의 위치를 바닥에 댄다. 깍지 낀 손가락을 지렛대 삼아 발끝부터 까치발로 걸어와 허벅지와 복부를 붙인다. 햄스트링이 끊어질 것 같다. 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정수리, 손, 어깨, 윗 팔의 균형을 느끼며 다리를 스르르 올린다. 성공인가. 쿵. 아이고 오늘도 실패다. 하지만 낙담하지 않는다. 인생은 마라톤이라 하지 않았나. 내일 또 하면 된다. 될 때까지 하면 된다.
처음엔 잘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어려운 동작을 잘할 수 있지? 질투심 가득한 마음으로 뻣뻣한 몸을 원망했다. 나는 왜 이렇게 못 하는 걸까. 자꾸만 조급 해지는 마음에 요가 수업에 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날도 많았다. 하지만 수행의 시간을 더해갈수록 마음은 느긋해졌고 단단해졌다. 조금 느리게 가면 어때. 가기만 하면 되지.
출처 - 픽사 베이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요가 수련을 이어온 지 9개월 차, 꾸준한 수련을 이어가다 보면 어려운 동작이 단 번에 되는 기적을 마주하는 날이 올 것을 안다. 반면 어제 잘 되던 동작이 오늘은 갑자기 안되기도 한다. 예측 불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흔들림 속에서 중심을 잡는 것. 그 모든 것에 초연하고 담담할 수 있는 마음 말이다. 요가 시간엔 오직 내 몸에만 집중한다. 흉곽을 조이고 골반을 말아 내린다. 스스로만 알아차릴 수 있는 미묘한 몸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려면 집중해야 한다.
요가원의 수업 시간표에는 하타, 빈야사, 인 요가, 재활, 힐링 등 다양한 클래스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힐링 요가 수업의 희선 선생님은 존재 자체가 위로였다.
" 어깨의 긴장은 툭 하고 푸세요. 머리는 사선 하늘로 뻗어 내세요.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내려가세요. " 여느 요가 강사의 언어와 다르지 않았지만,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특별했다. 잘하는 이와 못하는 이의 관계를 넘어서 인생이라는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그녀의 수업 시간에 몰래 눈물 훔친 날도 많았다. 깊게 마신 호흡과 활짝 열린 가슴, 왠지 모르게 위로받은 느낌에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뭉쳐있던 감정 덩어리가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낯선 감정이다. 몸과 마음은 하나로 이어져있는 게 분명하다. 슬픔, 분노, 위로, 행복, 설렘. 감정의 스펙트럼이 주르륵 펼쳐진다.
“ 너무 힘드네요. 그런데 저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
수련의 시간이 더해질수록 몸은 가벼워졌고 마음도 그랬다. 선생님 수업은 정말 좋아요. 제 삶을 많이 바꾸기도 했어요.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고, 그녀가 그러듯 눈빛으로 마음을 전했다.
매일 아침 만나지만 그 흔한 스몰 토크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나누는 유일한 대화는 수업 시간에 하는 몸의 움직임을 통한 대화뿐이다. 요가를 배우러 왔으니 요가만 한다. 군더더기는 없다.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구름 위에 포근히 안겨있는 기분으로 사바아사나에 머무른다.
출처 - 픽사 베이
10년간의 회사생활로 얻은 것은 화로 가득 찬 마음과 몇 가지 병명. 업무 스킬과 일머리를 얻은 것은 대단한 성과였으나 그렇게 얻은 반짝이는 머리를 굴리려면 에너지 충만한 몸이 필요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없었다. 한 번 망가진 몸과 마음의 건강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헬스장에서 비싼 PT도 받아보고,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무용도 시도해 보았다. 근육은 조금 붙었으나 마음은 나아지지 않았다.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몸의 수련과 더불어 정신까지 치유되고 맑아졌으니 말이다. 진작 시작할 걸. 지금이라도 시작하길 다행이다. 감사의 마음과 더불어 뾰족했던 마음이 몽돌처럼 둥글둥글해지기도 한다.
" 여보, 요가 더 자주 가면 안 돼? 아예 6개월을 등록해버리는 건 어떨까."
남편은 요가를 시작하고 화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며 요가 라이프를 적극 응원했다. 눈을 흘겼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잔잔한 호수가 떠오르는 고요한 마음의 상태. 8개월의 요가 수련 후 평화로워진 마음이다. 여전히 요가는 어렵지만 10년 이상 성실히 수행한 선배 수련자들의 모습을 보며 나아갈 길을 그려본다.
“ 각자의 다른 향기가 조화를 이루듯, 한 분 한 분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조용하고도 힘 있는 요가 선생님의 클로징 멘트를 마음에 가볍게 담고 하루를 무사히 보내길 기도한다. 내일은 내일의 묵은 감정을 털어내야 할 테지만 쌓인 먼지를 털어내듯 그렇게 매일 맑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