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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Jun 23. 2024

수많은 눈, 재첩국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아흔다섯 번째

병원에서 나오니 그 사람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담배를 피우며 기다렸던 듯 바닥에는 담배꽁초가 가득히 쌓여 있었다. 아니, 다른 사람이 핀 걸 수도 있다. 그 자리는 원래 담배 피우는 자리인 거 같으니 말이다. 평상시 같으면 나도 한 모금 피웠을 텐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자 내가 조개탕을 준비해 놨어 집에 가서 따뜻한 거 먹고 쉬자" 


조개탕이라니 미역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할 기분이 아니었다.


집에 들어가니 작은 테이블 위에 반찬들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벌레를 막는 작은 소쿠리가 얹어져 있었다. 저런 건 어디서 구했을까. 우리 집에 있던 게 아닌데. 아니 소쿠리가 아니라 벌레 막는 밥상보 그런 거 말이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딱히 아픈데도 없고 수술을 했다곤 하지만 몸이 이상 하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몸이 축 처지는 느낌. 그 사람은 냉장고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두꺼워 보이는 비닐용기 두 개를 꺼냈다. 나에게 가져와서 굳이 보여주었다. 재첩국이라고 쓰여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돼 금방 해줄게. 봉지를 뜯어 냄비에 부어서 끓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작은 국그릇에 그 재첩국을 담고 새로 한 밥을 밥공기에 퍼서 작은 쟁반에 얹은 그는 조심조심 밥상으로 돌아왔다. 뭔가를 먹을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 사람은 뭔가를 열심히 준비했고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평상시와 다르지 않다는 걸 더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밥을 먹기로 결심했다. 우리 둘 다 합의 하에 결정된 일이 아니었던 가.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받을 일은 아니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나 자신만 계속 원망했지만. 


재첩국은 회색 빛깔이 나는 탕으로 홍합탕 비슷한 느낌의 맛이었다. 수저로 휘저어보니 바지락살 같은 것들이 있었다. 바지락의 십 분의 일 정도 크기 되는 아주 작은 조갯살들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먹어 보니 홍합탕과 바지락 국 사이의 어딘가 쯤 맛이 났다. 살짝 비리지만 시원하기도 하고 숟가락으로 뜰 때마다 작은 재첩들이, 재첩 조개 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것들이 국물에 딸려서 입안으로 들어왔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인가. 이 얼마나 작은 영혼들인가. 이런 것들이 수십, 수백 개가 모여서 겨우 1인분이 된다니 어쩐지 조금은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하나하나 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수십 수백 개가 모여야 겨우 제 모습을 갖출 수 있다. 조개도 혼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난 세상에 영혼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사람들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동물이나 식물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냥 태어났다. 그리고 그냥 죽는다.


인간이라고 뭔가 큰 의미가 있을까? 그런 건 없다. 길거리에 태어난 태어난 꽃이 뭔가 사명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듯이 사람도 똑같다. 그저 태어나고 그저 죽을 뿐이다. 영혼 같은 것도 없다. 그래서 오늘 나는 그저 담담하게 병원에 갔다 와야 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싶었지만 이 사람은 환송식을 해야 했는지 뭔가 안절부절못하였다.


기분이 알 수 없이 가라앉더니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나지만 난 계속 재첩국을 먹었다. 그 사람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계속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손을 잡으려고 했다. 난 그 손을 뿌리치고 밥을 계속 먹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떠나간 무엇에게도 미안하지 않았다. 어차피 영혼이란 건 없으니까. 그저 이 세상에 나타났다가 없어진 것뿐이었다.


왜 인간이라고 특별히 영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길거리에 피는 풀이나 오늘 죽은 벌레의 세포 하나하나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세포 하나가 모여서, 열 개가 모여서, 수만 개가 모여서, 수십 수억 개가 모여서 생명체가 된다. 세포 하나하나에 영혼은 없다. 나무도 수억 개의 세포. 고래도 수억 개의 세포. 풀도 수십만 개의 세포 덩어리. 그렇지 않을까. 세포에 영혼이 없듯이 덩어리에도 영혼이 없다. 아무리 분열해도 세포일 뿐.


인간이 영혼을 가지고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면 그곳에는 인간의 영혼만 바글바글 모여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곳도 천국은 아닐 텐데. 그래서 영혼 같은 건 없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을 했음에도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그것은 아마 DNA에 새겨진 어떤 것이다. 종을 이어야 한다고. 세포 속에 각인된 어떤 방향키 같은 것이 내 감정을 자극해서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렇게 믿으면서 재첩국을 먹었다. 눈물을 손으로 닦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밥을 입에 씹어 넣었다. 목이 메어 재첩국을 크게 한 수저 퍼 올렸다. 수저 안에 수많은 재첩 알갱이들이 떠 다녔다. 흠칫 놀랐다. 그들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갑자기 수없이 많은 작은 조개들에 의미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을 번쩍 떠서 나를 쳐다 왔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수저를 던져 버렸다.


영혼 같은 건 없어 그런 건 없다. 우리는 그저 세포 덩어리뿐이라고.


수저 위에 수십 개의 생명이, 영혼이 깨어난다. 작은 세포 하나하나가 눈을 떠서 수백 개의 눈이 나를 바라본다. 난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소리를 지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일어난 나를 잡는 그 사람.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그 사람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 눈을 감아도 날 따라오는 다른 눈. 수십 개의 눈이 날 따라온다. 수백 개가 날 따라온다. 그날 난 맨날로 밖으로 뛰쳐나가 밤이 새도록 도망 다녔다.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났어도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밤. 바로 옆에서 끔뻑이는 수없이 많은 그 눈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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