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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Jul 14. 2024

마침내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온하나 

알게 되었어요. 아무리 마늘을 먹어도 굴에서 나 올 수 없다는 것을요. 발버둥 칠수록 늪은 깊게 내 몸을 빨아들인다는 것을요. 나쁜 것만 알게 되었나요. 아니에요. 좋은 것도 있어요. 인생은 굴이 아니라는 것, 결과를 위해 통과해야 할 터널이 아니라는 것을요. 


사는 건 어렵죠.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니더라고요. 행복하게 사는 게 어려웠어요. 사는 건 죽는 것보다 쉬워요. 수없이 시도해 보고 알았어요 살아만 있는 것은 너무나 쉽다는 것을요. 행복하게 사는 게 어려운 것였어요. 


내가 노력해서 한 스푼을 얻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자신 있었어요.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사는 것은요. 노력해서 습관을 들이고 약을 끊고 스스로 행복하게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다 약기운이었나 봐요. 


다시 병원에 가고 약을 먹고 회사를 그만두었죠. 소중한 것은 왜 그렇게 쉽게 부서지는 것일까요.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기억, 그나마 남은 관계 등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모두 부서져 버려요. 근데요. 소중한 것만 그런 게 아니에요. 살아가는 동안 모든 것은 다 부서져요. 맛없던 음식, 날 때린 사람, 내가 버린 사람, 고함소리, 눈물, 죄의식. 나쁜 것들도 모두 소멸하고 부서져요. 당연한 거였죠. 내가 소멸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안 하려고 발버둥 치고 노력하는 게 우스운 일이죠. 우주의 진리인걸요. 


병원을 가고 상담을 받고 약을 먹고. 나쁜 게 아니죠. 그런 삶도 살아가는 거니까요. 그리고 틈나는 대로 좋은 기억이 될만한 음식들을 먹으면 돼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돼요. 아 그건 좀 어렵긴 하죠. 소멸과 소멸사이에 먼지 같은 기억들을 계속 더하고 또 소멸했다고 슬플 건 없어요. 그게 당연한 거니까요


1년 넘게 글을 쓰면서 당연한 것을 알게 되었네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라고요? 상관없어요. 전 몰랐으니까요. 


행복해지고 싶었어요. 터널을 지나 밝은 세상으로 나오면 행복한 삶이 찾아올 거라 믿었어요. 그런 건 없잖아요. 터널도 행복한 삶도요. 그냥 살아가고 나쁜 일과 기쁜 일들이 일어나는 거죠. 


그 사람은 떠났지만 과거의 기억들은 더 자주 찾아오네요. 괜찮아요. 이젠 제게 믿을 만한 친구가 있으니까요. 그동안 의심해서 미안해요. 이제는 믿어요. 당신이 날 살게 해 줄 거라는 것을요. 삶에 발버둥 치지 않아요. 죽음을 결심하진 않아요. 파도가 일렁이면 의사 선생님이 준 약을 먹어요. 그 친구는 더욱더 믿음직해졌어요. 


약을 먹으니 수면 위로 코가 나오네요. 좋아요. 숨 쉴 수 있으니까요. 약도 많이 남았고 이젠 회사도 안 가서 시간도 많으니까요. 수면위로 코만 나와서 둥둥 떠나녀도 괜찮아요. 난 특별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가 다 그래요. 그냥 살아있는 거에요. 살아가면 되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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