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재난 시대에 개와 함께 산다는 것
지난해에 개를 입양했다. 이름은 레몬, 원 앤 온리 믹스견이다. 제주도의 어느 집 마당 쓰레기 더미 틈에서 태어나 작년 7월, 서울 우리 집에 왔다. 처음에는 임시 보호만 할 생각이었다. 나 이외의 다른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가뜩이나 험한 세상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는 일마저 쉽지 않다고 생각해 왔던 터였다. 하지만 레몬이를 만나 모든 게 달라졌다. 100일 정도 임시 보호를 하려 했던 마음에 한두 번씩 균열이 생기더니 입양이라는 새로운 마음이 싹텄다. 그렇게 입양했고, 지금은 나와 동거인 그리고 레몬이 이렇게 세 식구가 같이 산다. 가족의 탄생이다.
기후 위기가 내 일상의 위기가 되기까지
이때부터 우리의 일상은 달라졌다. 반복되는 돌봄 노동과 귀찮음을 압도하는 책임감으로 매일 세 번의 산책을 나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실외 배변을 하는 개와 스케줄을 맞추고 우리만의 루틴을 만들기 위해 무진장 애쓴다. 그렇게 새로운 가족과 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고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사랑을 배우고 있지만, 커다란 불안감 역시 찾아왔다. '기후 불안(Climate anxiety)'이다.
오늘 날씨가 어떤지 확인하면서 개와의 하루가 시작된다. 비가 오면 우의를 입히고 산책 코스를 조정한다. 눈이 오면 요리조리 염화칼슘을 피해 걷는다.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 인간도 개도 나가기가 곤란한데, 나의 개에게 상황을 설명할 도리가 없으니 일단은 밖으로 나간다. 개와 함께 살면서 매일의 날씨를 더 예민하게 감각하기 시작했는데, 불안감이 커지게 된 이유는 그때문일까?
2020년,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라던 54일간의 비는 '최장 장마'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서울 면적의 1/3이 탔다던 2022년 봄의 울진 삼척 산불은 213시간 만에 불길이 잡히며 역시 '역대 최장'이라고 역사에 기록됐다. 이 재난들의 공통점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점점 예측 불가능하고 극단적인 양상을 띤다는 것,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재난은 이제 나의 일상으로까지 침투했다. 기후 불안은 아침마다 그날의 기상 상황을 확인하는 것으로 표출되어 언젠가 어떠한 재난이 갑자기 나를 덮쳐올 거란 공포로 귀결된다. 행복하면서도 불안하다. 불안정한 기후만큼이나 불안감은 예측하지 못한 때 엄습해와서 나와 새로운 가족의 평온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을 훼방한다.
"애완동물은 대피소에 데려갈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서울 인왕산에서 불이나 진압 중이다. 우리 집에서 직선거리로 4km 정도 떨어진 근거리에서 산불이 난 것이다. 재난 문자 알림이 반복적으로 울리고, 머리 위로는 헬리콥터가 날아다닌다. 헬리콥터 소리에 불안한 건 우리 집 개도 마찬가지. 창밖을 보는가 하면 내 곁으로 와서 칭얼댄다. 나는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뭐라도 해야지 싶어 급하게 인터넷 검색창에 이것저것 검색해 본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제작한 <반려동물 가족을 위한 재난대응 가이드라인>을 확인하고, 국민재난안전포털에서 가까운 대피소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다 행정안전부에서 제시한 <비상대처요령>에서 "애완동물은 대피소에 데려갈 수 없습니다."라는 문장을 확인하고 놀랐다. 대한민국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응 계획에도, 구호 계획에도 반려동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해구호법 제3조에서는 구호의 대상을 '이재민, 일시대피자, 이 외 재해로 인한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응 지원이 필요한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으로만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작년 12월에 발표한 <동물복지 강화 방안>에서 "재난 발생 시 반려동물 대피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명시했는데, 반려동물 소유자 대상 재난 대피 교육프로그램과 동물보호센터 내 반려동물 임시 보호 체계를 새로 마련하겠다는 내용 정도만 확인할 수 있다.
불안을 넘어 우리 모두의 안녕을 바라며
나에게 자신의 삶을 통째로 의지하는 나의 개를 위해서라도, 기후 불안을 극복하고 무기력과 싸워보기로 한다. 코앞까지 다가온 기후 재난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장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지정한 대피소에 함께 갈 수 없는 나의 가족 레몬이를 위한 생존배낭이 필요하다. 점점 더워지는 여름과 점점 추워지는 겨울을 대비해 기능성 의류를 구비했고, 조만간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애견용 구명조끼도 장만해야겠다. 그런데 이런 비상 상황을 상상하면 할수록 의문만 커진다. 애완동물이라는 단어가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아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되고, 정부에서는 반려견 등록 의무제도를 운영하고,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삼은 이들의 수가 이렇게나 많은데 왜 반려동물과의 재난 대비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어야 할까? 재난 키트를 꾸리면서 내 안의 불안을 꺼보지만, 하루빨리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되길 바란다. 기후 재난 시대를 통과하며 인간과 동물, 나아가 모든 생명의 안녕이 동등하게 존중받길 기도한다.
이 글은 빅이슈 297호(2023.04.15.발행)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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