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경기를 위해 잘려나간 10만 그루의 나무를 기억하며
2024 파리 올림픽을 보며 가리왕산을 떠올린다. 막 활동을 시작한 나의 첫 현장이었던 가리왕산.
2014년, 전기톱 굉음에 벌목되던 나무들의 짙은 수액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맴도는 것만 같다.
우리가 힘껏 끌어안았던 나무들은 이제 없지만,
우리에겐 아직도 해야 할 요구들이 남았다. 지켜야 할 약속들이 남았다.
*파리 올림픽 폐막까지 가리왕산 복원 촉구 서명을 받습니다.
올림픽 폐막 직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산림청에 서명을 전달합니다.
https://campaigns.do/campaigns/1314
이날이 오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말입니다. 성화 봉송을 한다며 도시 곳곳이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한 가운데 이런 풍경이 저는 무척 못마땅하네요. 네, 저는 평창올림픽을 반대합니다. 저는 평창이 아닙니다.
올림픽 보이콧, NOLYIMPIC! 1)
7년 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확정 후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올림픽이 가져올 효과에 대해 ‘경제 발전’을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올림픽이라는 메가스포츠 이벤트에 대한 이런 왜곡된 기대는 ‘경제 효과’라는 과장 광고에 속은 것이죠. 지금 상황을 보면, 경기 티켓 판매 실적은 부진하고, 올림픽 이후 경기장 운영을 예측한 결과 연간 100억여 원의 적자가 생길 것이라고 합니다.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평창동계올림픽의 비전은 “동계 스포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평창과 대한민국에 지속 가능한 유산을 남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유산을 남기는 것’이 비전이라는 부분 말입니다. 고작 3일 치르는 알파인스키 경기를 위해 500년간 보호해 온 원시림, 가리왕산을 파괴해 놓고 ‘지속 가능’이라니요? ‘유산’이라니요! 이렇게 빚잔치와 환경 파괴를 자행한 올림픽에 분노한 시민들은 얼마 전 광화문에 모여 ‘뚫어뻥’을 들고 안티 토치Anti-torch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지난 2013년, 주민 투표로 2022 뮌헨올림픽 유치 신청을 철회한 독일 시민들처럼 올림픽을 보이콧하자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요. 물론 이렇게 한다고 가리왕산 숲을 되살릴 수는 없지만요.
사라진 500년의 세계를 기억하다
3일간의 알파인스키 경기를 위해 천혜의 숲이 파괴될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리왕산을 찾은 건 지난 2014년 5월이었습니다. 산길에는 그 흔한 나무 데크는 없고, 풍혈風穴 지역답게 바위가 많아 제대로 걷기조차 힘겨웠습니다. 초록으로 뒤엉킨 숲은 하늘마저 가릴 정도였고,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한 생태계 자체가 뿜어내는 생명력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등산복 차림의 인간은 침입자가 됩니다. 이 원시적인 숲은 곧장 인간을 밀어내려 합니다. 빽빽한 숲에서 날아오른 수많은 벌레가 온몸에 달라붙으며 숲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았습니다. 흔히들 우스갯소리로 ‘다시는 안 가리’왕산, ‘가리악惡산’이라고 그 산을 기억합니다. 무려 500년이나 인간을 침입자로 규정하며 ‘스스로 그러한’ 모습을 지켜온 것을 목도한 후, 산이란 원래 인간이 쉽게 드나들 수 없는 곳이라는 걸 체험한 것이지요.
가리왕산을 보호림으로 지정한 것은 세종대왕 때입니다. 근대 이후에도 산림 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했습니다. 산나물이라도 캤다가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개발은커녕 손대는 것조차 엄격히 금지된 세계, 그야말로 ‘원시림’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그 세계는 사라졌습니다. 이제 그 경이로운 원시림, ‘스스로 그러한’ 자연은 기억 속에만 존재합니다.
지켜낼 수 있었던 숲, 그래서 다시 짜는 계획
가리왕산을 지킬 수 있는 대안은 분명 있었습니다. 녹색연합을 비롯한 시민 단체는 국제스키연맹의 규정집에 명시된 투런 2 Run 규정2)과 올림픽 분산 개최3)를 적용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강원도와 조직위는 투런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했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씨는 일언지하에 분산 개최를 반대했습니다. 조직위원회는 ‘이미 늦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정확한 이유나 근거를 제시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2016년에 국정 농단 사태를 겪었죠). 그렇게 인간이 발을 들여놓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던 가리왕산은 벌거숭이산이 되어버렸고, 지금은 단 사흘의 경기를 위한 스키장으로 바뀌었습니다. 평창올림픽 이후 가리왕산이 ‘스스로 그러했던’ 모습을 되찾도록 정부와 관계 기관은 과연 얼마나 힘을 쓸까요? 앞으로 우리의 지속적 관심과 감시가 참으로 중요한 때입니다.
기억하고 기록하는 힘
500년의 세계가 무너지던 순간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떤 이유로 가리왕산을 잃었는지, 그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하려 합니다. 그것이 진정 ‘지속 가능한 유산’이라고 믿습니다.
1) ‘No, Olympic’의 합성어. 겨울 스포츠 강국인 독일과 스위스는 주민 반대로 올림픽 유치를 포기했고, 노르웨이 역시 경제적 부담 때문에 유치를 철회했습니다.
2)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 또는 개최국 지형 여건상 알파인스키 경기의 표고차(800m)를 충족하지 못할 때 350~450m 경기장에서 두 번 완주해 점수를 합할 수 있다는 규정입니다. 이를 적용하면 기존에 있던 스키장을 활용해 경기를 치름으로써 가리왕산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3) 2014년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올림픽 어젠다 2020’을 통해 다른 국가, 다른 도시와의 분산 개최를 승인했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한 경기장과 부대시설을 새로 짓지 않고 기존 것을 활용했다면 수천억 원대의 비용 절감도 가능했습니다.
*이 글은 '나는 평창이 아닙니다'라는 제목으로 빅이슈 172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