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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Sep 22. 2020

black dog

평생의 반려


며칠간의 긴 휴무를 본가에 내려와 보내고 있다. 사실은 몸이 너무 안 좋아 동거인도 격리되느라 나간 나만의 자취방에서 혼자 지내고 싶었는데, 열이 오른 머리가 작동을 하지 않아 그럴듯한 핑계를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자취 5년차, 본가에 내 공간은 없다. 나의 짐과 흔적 아무것도 없다. 내가 죄다 가지고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가에 내려오면 나는 거실에서 잔다. 우리집 거실은 티비 대신 한쪽 벽면이 거대한 책장으로 메꾸어져 있다. 책장과 붙어 뜬금없이 침대가 있다. 맞은편엔 소파가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누울 자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긴 하다. 


1년간의 상담치료 후 우울을 다스리는 방법을 많이 배웠다. 이렇게 멀쩡히 집에 내려와 가족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도 있게 되었고, 나 자신을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찾아온 깊은 우울은 왜인지 모르겠다. 이제까지 알던 방식이 먹히지 않았다. 삶은 계속 변화하니까, 동굴도 변화하고, 극복의 방법도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고... 어제는 행복하게 잠에 들었다. 눈 마주칠 때마다 달려와 온 얼굴을 침범벅으로 만들어 놓는 엄마네 개가 내 몸에 어디든 딱 붙어 자려고 했다. 덕분에 쥐 나는 자세지만 종아리가 따끈따끈한 채로 잠들었는데, 세 시간 만에 깼다. 그리고 또 두 시간 후에 깼다. 심장이 쿵쿵거려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태풍이 심하다. 창밖에 나무가 쓰러질 듯 춤을 추고, 온 집안이 덜컹거리는 기분이다. 새벽 5시 반은 너무 깜깜하고, 나는 사방이 뻥 뚫린 잠자리에서 불안함에 떨고 있다. 알 수 없는 불안함이다. 어두운 곳에서 새까만 개의 흰자가 내 눈치를 살핀다. 이곳에서는 아픈 티를 낼 수가 없다. 도망칠 곳이 노트북 모니터 화면 뿐이다. 


나는 혼자 살 수 없다. 내 삶에 사랑이 필요해. 혼자 공부를 하고, 혼자 밥을 먹는 일상 따위야 할 수 있지만, 끊임없이 사랑과 삶을 주고받을 대상이 필요하다. 땅에 딛어져 내 몸을 지지하고 있는 두 발바닥이 위태위태하다.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 나만 아픈 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하고, 내가 아프다는 걸 단 한 사람이 알았음 한다. 영원한 동앗줄 단 한개만 하늘에서 내려왔으면. 그것이 알고 보면 내가 타고 올라갈 수 있는  황금 동앗줄이 아니더라도, 영원히 잡고 있을 수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안식이 되리라. 


아마 이 개는 평생 내 뒤를 따라다닐 것이다. 나는 강형욱처럼 이 개를 다루는 법을 완벽하게 공부해서, 하지만 개마다, 때마다 다르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은 채로, 평생을 잘 조절하고 컨트롤해야 할 것이고 아마 여러 번 물리겠지. 왜 내가 이 개와 반려가 되었는지도 생각해 본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갖고 태어난 것인지, 내가 왜 어떤 것을 몰라서 실수해서 이 개와 만나게 된 것인지.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어쩔 수 있었던 것인지. 아주 아주 억울하고 고통스러울 때도 많다. 하지만 나는 인생의 많은 것을 벌써 알고 있다. 가족, 반려라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어느새 삶에 녹아들어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나의 많은 부분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타투를 생각하고 있다. 공황과 우울이 찾아올 때마다 부여잡는 심장 근처에, 그러니까 왼쪽 가슴 밑에. 살이 연하고 뼈가 있는 부위라 너무 아프겠다. 블랙 독을 화이트 타투로 하는 것도 좋겠다. 그러니 black dog이지만, 내가 깔끔히 컨트롤해서 그 개를 빛바래게 만들어 버린다는 의미로. 지금은 어리고 힘이 쎄서 날뛰는 이 개를 잘 길들일 거다. 한동안 잠잠하다가 다시 날뛰는 때가 있겠지. 그러면 또 고통스러워하다가 잘 지켜낼 거다. 내 일부고 내 반려라면 받아들여야지. 그리고 평생을 아웅다웅 같이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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