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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May 03. 2023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이나다 도요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현대지성

패스트무비, 10초 건너뛰기, 1.5배속


얼마 전 #카지노 를 봤다. #양승원 의 최민식 성대모사는 정말 엄청났다. 성대모사로 시작된 알고리즘은 날 카지노 #패스트무비 (요약본)로 이끌었다.

Chat GPT가 난리다. 여기에 편승해 AI 관련 교육을 하나 신청했다. 집에서 9시부터 5시까지 진행되는 강의였는데, 1.5배속으로 강의를 듣고 남은 2시간은 카지노 패스트 무비를 봤다.


카지노가 여기저기서 너무 회자되는데, 이야기에 낄 수 없었고, 코미디 프로를 봐도 크게 웃을 수 없었다. 강의는 오히려 너무 느린 목소리가 더 집중이 안 되는 느낌이었다. 요약본을 보고, 10초 건너뛰기를 하고, 빠른 배속으로 보고 난 후 뭔가 시간을 벌어들인 느낌을 받았다. 시간 가성비가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나 영상을 보는 양상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인식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감상에서 소비로


저자가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이유 중 하나로 꼽은 것은 영화 감상에서 콘텐츠 소비로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품을 접하고, 음미하고, 몰두하는 것만으로 독립적인 기쁨과 희열을 느낀다면 ‘감상’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에는 다른 실리적인 목적이 수반된다. ‘화제를 따라가기 위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작품을 보는 행위가 이에 속한다.

내가 카지노를 요약본(패스트무비)으로 본 이유는 실리적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난 카지노를 감상한 것이 아니라 소비했다.

감상에서 소비로 넘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 이유로 3가지를 꼽는다.

(1) 영상 공급 미디어 다양화로 인한 영상 작품의 공급 과다.
(2) 공감을 강요당하고, 개성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실패를 두려워하는 현 세대의 특징으로 인한 시간 가성비 지향
(3) ‘얕은 감상’이 많아지면서 ‘알기 쉬운 것’이 추구되는 흐름에 따른 대사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영상 작품의 증가



영상 작품의 공급 과다


인터넷의 발전과 보급으로 채널과 디바이스가 다양해졌다. 장소와 시간의 제약 없이 혼자서 언제든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볼 수 있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시간을 맞춰 극장에 앉아 오롯이 2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과는 달리 언제, 어디서나, 무제한으로 영화나 영상 콘텐츠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구독만 하면 언제나 영상이 무제한으로 제공되니 보다가 그만 봐도, 넘기면서 봐도 전혀 아까울 것이 없다.



시간 가성비 지향


이 영화 정말 재미있을까? 이 드라마가 나에게 의미가 있을까? 시리즈 8편에 10시간이나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썸네일만 1시간 돌아보다 친구에게 톡을 보낸다.

“넷플릭스 영화 추천 좀.”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욱 실패를 두려워한다. 실패를 피할 수 있는 도구들이 여기저기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24시간 SNS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고, 리뷰나 스포일러 페이지를 보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으면 영화의 결말까지 지금 당장 볼 수 있다. 실패에서 배우고 다시 일어서서 도전하기보다는 아예 실패를 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시간 가성비가 중요하다. 최대한 실패를 피하고 그 시간을 아껴 아껴 너무 흔하지 않으면서 너무 튀지는 않는 개성을 장착하는 데 활용한다. 자소서에 날 표현하는 적절한 무기로는 적절한 개성이 아주 적절하다.

그것에 대해 아는 사람, 익숙한 사람이 적은 개성은 개성으로서의 가성비가 좋지 않다는 말이다. 발레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적은 탓에 화제로 발전하기 어렵다. (…) 너무 개성적인 개성은 개성으로서 가능하지 못한다.


가성비 좋은 개성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유용하다.

친구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그저 듣고만 있어서도 안 되고, 방관자로 일관해서도 안 되다. 메시지를 읽고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소위 ‘씹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센스 있는 한 마디로 분위기를 고조시켜야 한다.

'센스 있는 한 마디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는 빨리 감기로라도 지금 유행하는 영상이나 영화를 봐야 한다.


압도적 주류가 사라졌다. ‘지나치게 튀지 않는 개성’이 넘치는 인플루언서들이 주변에 넘쳐난다. 나보다 뛰어난 것만 같은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 조급함은 기댈 곳을 찾게 하고 가성비 좋은 무언가를 찾는다.



대사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영상 작품의 증가


우리는 아무런 비용 없이 간단하게 ‘피해 사례’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이 영화가, 이 책이 어떤지 너무나 쉽게 SNS에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대부분은 전문가가 아닐뿐더러, 영화를 깊이 감상할 정도로 시간을 투자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그래서 재미가 없었다)”라는 리뷰를 올리기 쉽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이를 피하는 방법은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뿐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건 문제인가? 고쳐야 하나? 빨리 감기를 없애는 제도적 장치라도 마련해야 할까? 쉽게 설명해 주는 영화는 나쁜 건가? 예술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건가?


작가는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본다니 대체 어찌 된 일일까?’라고 책을 끝맺지만,


영상을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편하게’ 보는 행위, 즉 빨리 감기나 건너뛰기라는 현대인의 습관은 문명의 진화에 따른 필연이다.

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


영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예술이 아닌 천박한 오락에 지나지 않았던 것처럼, 콘텐츠의 변화도 불가피할 것이다.


이제는 빨리 감기 할 필요가 없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싸움이 펼쳐지지 않을까?


물론 그런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는 빨리 감기로 보는 대신 시간을 들여 책을 읽고 영화를 감상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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