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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Jan 06. 2024

조용한 사직 Quiet Quitting

조용한 사직을 해야겠다. 아니 난 이미 조용한 사직을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용한 사직 Quiet Quitting

조용한 사직 Quiet Quitting이라는 말은 2009년, 한 심포지엄에서 나온 말이지만, (내가 알 정도로) 대 유행하게 된 건 2022년이다. 2022년 7월 경, Zaid Khan이라는 20대 엔지니어가 틱톡에 17초짜리 영상을 올린다. 지하철, 거리, 비눗방울 영상과 함께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Quiet Quitting, Quitting the idea of going above and beyond at work. Work is not your life. Your worth is not defined by your productive output.

2개월간 해당 영상의 조회수가 360만 회를 넘었고 언론에서 심층적으로 다루게 되면서 조용한 사직이라는 용어가 주목받았다.

https://www.tiktok.com/@zaidleppelin/video/7124414185282391342


조용한 사직은 업무 기술서에 적힌 내용 이상의 일, 나에게 주어진 일을 넘어서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지 않고, 늦게 퇴근하지 않는다. 의무적으로 참석해야만 하는 회의에만 참석하고 다른 회의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회의에 참석하면 의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하지 않는다. 괜히 잘못 엮이면 내 일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일을 처리할 만큼, 문제가 없을 만큼 최소한의 노력을 일에 투여한다.


개인의 생활보다 일을 중시하고 일에 모든 열정을 쏟아 넣는 삶을 거부한다. 조직을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하지 않는다. 휴가가 회사 일정과 겹쳤을 경우 당연히 휴가를 취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리적으로도 일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내 에너지를, 내 시간을 더 쓰지 않는다.


나의 2023년,

워라블을 시도하다.

2023년이 되면서 워라밸이 아닌 워라블을 챙겨보려고 했다.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워라밸(Work and Life Ballance)이라면, 워라블(Work & Life Blending)은 일과 삶을 조화롭게 잘 섞는 것이다. 일과 삶을 철저히 분리하는 것이 워라밸이라면 일에서 삶에 대한 영감과 성취감을 얻으며, 삶에서 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업무에 적용하려 애쓰는 것이 워라블이다.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노력했고, 일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려 애썼다. 일상에서 업무 아이디어를 떠 올리고 이를 업무에 적용해서 보고서도 올려봤다.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일터에 있기 때문에 일 자체를 즐겨보려 노력했다. 결과는 대실패.


일에서 만족감을 얻으려면 여러 가지가 필요하지만 자율성과 완결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업무를 진행해 나가는 정도가 높을수록, 업무의 완결까지 내가 미치는 영향도가 높을수록 만족도가 올라간다. 만족도가 올라가야 일 자체를 즐길 수 있고 성장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의 자율성과 완결성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고객도 전략도 아니었다. 조직장의 취향이었다. 조직장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모든 조직이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율성이나 완결성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디지털 전환은 말로만 중요하지 실제로는 중요하지 않다.


사업계획에는 그럴듯한 말로 ‘빅데이터와 AI 분석을 활용한 시장 세그멘테이션’, ‘AI를 활용한 로보어드바이저’와 같은 말을 써 놓지만 실제 제일 중요한 건 코 앞의 실적이고 이를 위해 제일 좋은 방법은 영업 채널을 쪼는 거다.


전반기에 여러 시도를 했다. 새로운 시각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라보고, 회의 시간에 반대 의견을 활발히 내놓기도 했다. 조직장은 관심이 없었고, 내 의견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조용한 사직을 해야지’라는 다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때부터 난 최소한의 일만을 했던 듯하다. 정해진 일을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만 했다. 심리적으로도 일과 거리를 두었다.


내가 잘못된 건지, 세상이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최소한 이 조직에서 나는 일에서 만족감을 얻기 힘들다는 거다. 2024년도 아주 조용히 사직하고 부담 없이 회사를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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