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림 Apr 10. 2023

뛰다가 사주를 보러가는 건 기분에 도움이 된다


    언젠가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다. 퇴근이 일렀던 평일 저녁, S와 논현에서 만나 하이볼을 마신 날이었다. 각자의 실연을 흐릿하게 하려고, 그로 인한 무한한 가능성을 축하하려고, 그도 아니면 그냥 신년이니까라는 핑계로 우린 술을 제법 마시기로 하였다. 당시 자영업자이던 S와 월급쟁이인 나 사이에는 연애의 종지부 말고도 무력이라는 연대가 있었다. 금방 잠잠해질 줄 알았던 코로나 팬데믹이 약 1년째 지속되면서 S는 손님을 잃었고 나는 프로젝트를 잃었던 것이다. 빵집 사장과 방송국 노동자의 입장이 빈틈없이 일치하진 않겠지만,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답답한 일이란 사실에 둘 다 동의했다. 아마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S와 나는 만나자마자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갓 튀겨진 가라아게의 맛에 반해 낄낄댔다. 튀긴 게 맛없으면 유죄야.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하이볼을 두 잔 째 비우자 별안간 이 가게가 너무 좁게 느껴졌다. 취하면 누구나 청춘이 된다. 나는 이 막막한 청춘을 어떻게 보내야 좋을지 당장 그 단서를 얻고 싶어졌다.


    우리 나가자.

    지금?

    내 생각엔 아무래도 사주를 봐야 할 것 같아. 당장.


    나는 S가 나의 즉흥적인 면모를 일종의 이벤트 정도로 여길 수 있는 아량 넓은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관대함이 우리의 우정을 12년째 이어주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벤트도 반복되면 피로한 법이고, 두 번째 안주가 나온 지는 채 30분도 되지 않았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사느라 바빠서‘ 따위의 핑계로 마음만큼 잦지 못한 만남과 그로 인해 헤어질 때쯤 아쉬운 표정으로 뒤돌아야 하는 사이에서조차 최적과 효율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물론 그건 나의 사정이고, S의 경우는 좀 다를지도 몰랐다. 하지만 S는 꺄르르 웃으며 나와 같이 가게를 뛰쳐나왔고, 나는 정확히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어떤 것이든 함께 무릅을 쓴다는 것은 우정의 다른 이름 같다고 생각했다.


    근데 어디 가지. 너 아는 데 있어?


    S가 상기된 표정으로 물었다.


    다행히도 나의 직장이 방송국인 관계로, 바꿔 말하자면 대한민국 샤머니즘 시장에 은은하게 일조하는 자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는 집단에 속해있는 관계로, 내겐 오고 가며 주워들은 신성한 주소가 몇 개 있었다. 그중 우리가 있는 위치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한 점집이 있었다. 가게 이름은 '00 사주타로'. 손쉽게 추측건대 00동에서 사주와 타로를 봐주는 곳이었다. 조금은 성의 없어 보이는 상호명에 잠시 의구심이 솟았지만 우리는 취했고 취한 상태로 달리는 건 재밌으니까 이곳에 가기로 했다.


    생년월일. 앉자마자 대뜸 파고드는 선생님의 질문에 S가 답변하는 동안, 나는 아이패드를 꺼내 그녀를 대신해 받아 적을 채비를 마쳤다. 우리 둘 다 숨을 죽였다. 선생님의 미간이 찌푸려진 이유, 거침없이 휘갈겨진 글씨의 의미, 혹은 끄덕거리는 고개의 속뜻 같은 걸 가늠해 보고 싶어서.


    그렇게 S가 헐, 대박, 꺄르르를 반복하는 동안 나는 마치 태어나서 필기를 처음 해보는 학생처럼 모든 글자를 받아 적느라 분주했다. 이어서 내가 헐, 대박, 꺄르르를 반복하는 동안 그녀 역시 조금 전 내가 했던 일을 반복했다. 살아온 몇십 년과 살아갈 몇십 년이 '연애나 결혼', '일과 재산', '건강과 가족' 같은 키워드로 간단명료하게 요약되는 걸 보면서 나는 미묘한 감정에 휩싸여야 했다. 그건 단순한 삶을 복잡하게 사느라 일생을 피로하게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후회와, 복잡한 삶이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될 수 있는가의 불신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삶이 그리 간단한 거면 좋겠네요.' 왼쪽 어깨 위의 예림이 이렇게 말하면 오른쪽 어깨 위의 예림은 이렇게 답했다. '안 될 건 뭔데?' 그러면 가운데 있는 예림은 이렇게 말했다. '필기하느라 바쁘니 나가서 싸우지 않으련.' 게다가 평생에 걸쳐서 세운 각자의 계획과 선생님의 해석에는 약간의 격차가 있어서 우리는 금세 김이 팍 새 버리고 말았다. 이를테면 S와 선생님의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흐음.. 우리 S 씨는 결혼하면 가장이 되어 가정을 이끌 것이여.

    선생님, 저는 가장 그런 거 싫고요. 그냥 마음 편하게 살고 싶은데요.

    사주가 그런 걸 어떡해.


    S는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렇다고 나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는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어요.

    예림 씨는 재테크 이런 거 관심 두지 말고 일을 열심히 해야 돼.     


    이미 충분히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도대체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 아찔해져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삼십 분 뒤 우리 두 사람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가게 문턱을 나섰고 나는 내 눈앞에 펼쳐진 충격적인 광경에 온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야, S야.

    왜.


    나의 표정을 보고 S도 덩달아 침을 꼴깍 삼켰다.      


    저기 봐봐.

    어?

    우리가 갔어야 하는 데는 저기다.      


    눈앞에는 노란색 간판이 현란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고, 놀랍게도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00 사주타로'


    그렇다면 우리가 방금 다녀온 곳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나는 천천히 등 뒤의 간판을 확인했다.


    '00동 사주타로'


    우리는 잠시 말을 잃었다가 눈물을 흘리며 깔깔 웃었다.


    또 갈래?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그래!


    그렇게 우린 또 뛰었다, 그 짧은 거리마저도. 정말이지 그날처럼 우리의 체력과 시간, 낭만의 삼박자가 잘 맞았던 날은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점집을 나섰을 때 우리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있었는지 혹은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는지는 누군가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확실한 것은 그 후로도 우리네 삶은 별반 다르지 않게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양상으로 흘러갔고, 갈겨쓴 두 권의 필기 노트는 인생의 핵심 족보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처음 살아보는 인생과 친해지느라 웃고 우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하지만 나는 가끔 막다른 곳에 다다른 기분이 들 때마다 발바닥이 불이 나게 뛰어다녔던 그 밤거리를 떠올린다. 멀리서 들려오는 도로 위 소음과 왁자지껄한 가게를 비집고 나온 고기 냄새, 영원히 꺼질 것 같지 않던 도시의 불빛들을. 혹은 지구의 자전마저 멈췄던 것 같은 몇 초간의 정적이나, 뛸 때마다 종아리 근육까지 타고 올라오던 콘크리트 도로의 묵직함 같은 것을 말이다. 나무의 기운을 가진 S와 물의 기운을 가진 나 사이에는 이것 말고도 엉뚱한 추억들이 몇 개 더 있었다.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었던 어느 저녁, 나는 우연히 아이패드 속 갈겨쓴 글씨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 삶을 지탱하는 것들은 8개의 글자보다 이런 기억들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고, 그 순간 나는 잠깐 견딜 수 있는 기분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필라테스와 아프리카의 상관관계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