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일라 Sep 11. 2020

코로나 시대, 음악이 사라진 도시들


흔히 말하는 무형의 예술인 음악이 길거리, 떼아트르, 공연장, 카페 등 어디든 상주하는 나라. 예술인의 혼이 깃들어 있는 나라. 드뷔시, 라벨, 사티의 나라 프랑스. 하지만 Covid-19로 인한 판데믹 아래의 영향은 프랑스를 비켜가지 않았다. 정부는 모든 도시를 철저히 봉쇄함에 따라 각종 공연장을 닫고 모든 예술활동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차갑게 닫힌 클럽 앞에서 생존할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프랑스 예술인 복지제도, APL, RSA, Intermittent 등 다양한 제도로 예술인들을 보호하는 실업 수당 또는 일정 소득을 보장하고 있지만, 이는 소득을 정보에 신고하고 그 액수를 바탕으로 수입이 없는 지금 같은 때에 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이며, 이는 아주 최소한의 생활만을 보장한다. 만약 전년도에 일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면 이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낮게 된다. 그렇다면 활동할 수 있는 무대와 장소 자체에 제약기 걸린 올해, 음악가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예술에 대한 넓은 인식으로 프랑스엔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여러 제도들이 생겨났고, 덕분에 예술의 나라라는 인식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아예 일 자체를 할 수 없게 된 지금, 프랑스라 해서 딱히 나은 상황이라고 볼 순 없다. 여러 다른 직종과도 같이 예술인들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판데믹이 시작 되기 전엔 연주를 하며 클럽과 레스토랑을 전전할 수 있었고,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은 레퍼토리로도 매주 노래할 무대는 많았다. 매주 금, 토에 열리는 장르별 음악 축제와 공연 그리고 잼 세션에 뮤지션들이 모여 밤새 술 마시고 연주하는 모습 또한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클럽 골목엔 횡량한 적막만 남았다. 간신히 락다운이 풀리고 나서 겨우 공연 일정이 몇 개 잡혔지만, 이마저도 취소될 가능성이 농후했기에 보편적인 생존 전략으로 볼 순 없었다.


물론 코로나 사태 전에도 창창하기만 했던 미래를 꿈꿀 수 있진 않았다. 하지만 사회와 유리되어 있는 지금, 동료들 모두 음악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느끼던 막연한 불안감이 뭍으로 드러나 실체화된 것 과도 같이 느껴질 것이다. 더 이상 비싼 파리 월세를 한 달에 한 두 개 잡히는 공연으로 감당할 수는 없으며, 간간히 이어가는 레슨으로 생활 연장을 하고 있을 테니까. 이마저도 비대면으로 전환하며 상황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국면에 적응해 나가는 등 갖은 노력을 들이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그나마 긍정적인 효과를 하나 (그나마) 말해보자면, 집에서 락다운을 지내며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랄까. 실제로 온라인으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어 이를 잘 활용하는 것 또한 이 시기를 극복할 현명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내실을 다지고 레퍼토리를 확보하는 데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불안한 마음을 마음 저 편 깊숙한 곳에 밀어 누른다. 회복될 가능성을 전혀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작은 걸음을 힘겹게 내딛는 것이다.


이 시대에 가속화되고 있는 ‘언택팅’ 변화 속, 음악인으로서 어떤 삶의 방향을 꾸려야 할지에 대한 사유를 두루 접한다. 거시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정보야 차고 넘치지만, 그 속에서 나의 입지는 어떻게 확보해야 하며 경제적인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주를 이룬다. 이런 생각을 나누고 읽다보면 사실 기운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계속되는 기후위기와 코로나가 나의 커리어를 통째로 쥐고 흔들 수 있다는 것을, 그만큼 무너지기 쉬운 것들을 유지하려 오랜 시간 동안 아등바등 애써왔다는 사실에 무기력해지니까. 이렇게 우울감에 지배당할 때면, 정의당 위원장인 장혜영 님이 모 인터뷰 내용 중,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보다 명확하고 또렷한 것이 아니며 사람과 사람 관계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한 말을 떠올려 본다.


그녀는 장애인권과 시설 그리고 여성의 이야기를 하며 불평등의 맥락에서 이야기를 꺼냈지만, 결국 모두의 이야기로 귀결된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은 불행과 불평등을 혼돈한다.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온 사회의 구조적인 불평등에, 그 어디에도 예술인이 설 자리가 없는 현실을 마치 개인의 불행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하는 것. 조금 더 기민하고 현명하게 사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더욱 집중하고 상호 소통하는 것. 이런 빛이 나는 위로의 말들을 떠올리며 기운을 내본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무한히 경쟁만 해오던 시간을 지나쳐 이제는 자신을 실현할 자유를 꿈꾸고 싶다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난 여름, 이사를 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