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아직 다 가시지 않은 더위가 버겁죠.로 시작한, 방금 한 선생님께 보내는 한 편의 편지 쓰기를 끝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총 여섯 편의 편지를 발행하는 것이 목표인데, 틈이 나는 대로 부지런히 당신 생각을 하고, 적고, 고치고를 반복해야 마칠 수 있을 듯하다. 시시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누군가에게 가 닿을 생각을 하니 정말이지 오랜만에 설렌다. 내 편지가 어디에서 읽힐까, 읽고 어떤 생각을 할까. 회신은 언제 올까, 받을 수는 있을까. 편지를 쓰고 보낸 후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도, 편지를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생각해 두었던 과정이었다.
밥 먹고 사는 노동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두 시간이다. 바로 운동하는 순간, 그리고 시를 쓰는 순간. 작년에 만났던 한 시인이 떠오른다. 오래전에 등단한 그녀는 술을 마시며 시를 쓰는 순간이 유일하게 방해받지 않고 창작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술을 마셨고, 테이블 위에서 그녀의 책을 낭독했었다. 그날 밤 모두와 함께 사랑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말이 뭐였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또렷이 기억난다. 연필로 시를 쓰고 가사를 적고 노래하는 동료들의 들썩거리는 어깨가. 문득 그들을 떠올리며-일 년 넘게 지난 지금 여전히 똑같이 밥 먹고 사는 노동 문제에 시달리지만- 다시 시를 읽고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살면서 여기저기 삶의 터전을 옮겨 다니지만 그동안 받은 손 편지들은 이고 지고 꺼내어 읽는 정도의 낭만은 잃지 말자. 누군가는 그깟 시 따위, 편지 따위 소중하게 대할 것 없다고 말한다. 그걸 들여다볼 시간에 주식장이나 한번 더 켜볼 것이지 라며. 그 마음에 대항하는 심정으로 편지를 오랜만에 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