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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u Dec 15. 2020

지안에게 - 첫 번째 편지

색이 사라진 시간들 


지안아, 어떻게 지내니.


언제나 장난스럽게 바꿔 불러오던 너의 이름을 이렇게 한 글자씩 진지하게 부르려니 어색하다. 30년 동안 불리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갖는다는 건 어떤 기분이니. 나는 여전히 개명하기 전의 이름이 너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이 새로움이 너의 일상에 부드럽고 아늑하게 스며들길 바라고 있다. 새 이름은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아 시야에 편안히 들어오는, 언제든 마음먹으면 올라가 그 땅을 밟아볼 수 있는 단단한 언덕 같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이름을 좋은 사람들이 불러주면 좋겠다. 좋은 사람들이 너의 이름을 부르며 네 곁에 머물면 좋겠어. 


여름에 겨우 짬을 내서 본 것이 올해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되겠구나. 크리스마스 즈음 가볼까도 생각했었지만 상황이 더 어려워졌어. 물론 나 하나는 감염되지 않았을 거라는 우매한 확신을 갖고 잠시 얼굴을 보러 갈 수도 있겠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듯이 말이야. 몇 달째 집에만 머물고 있는 나는 언제든 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요즘 같아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흐르는 눈물 때문에 그냥 다음에 마음이 좋아지면 가야지 하고 생각한단다. 가끔씩만 너를 보는 나로서는 가장 예쁜 모습, 행복하고 건강한 모습만 너에게 보이고 싶어. 


너도 아마 그렇겠지. 내가 가겠다고 하면, 너도 나를 위해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준비하겠지.       



내가 실직을 했다는 걸 엄마에게서 들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3개월도 전의 일이니 너도 아마 알고 있겠지. 


학교를 졸업한 뒤 직장을 구하려고 혼자 떠나와 정착한 지도 벌써 15년이 넘었어. 가족을 떠나 살겠다는 결심을 어느 순간에 굳히게 되었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구직 사이트를 둘러보다 회사라는 건 죄다 서울에 있다는 걸 깨닫고 나서였겠지.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고, 나는 지금 다시 구직 사이트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고 있다. 무겁고 괴로운 마음으로. 나에게 다시 기회가 있을까, 절망적인 심정으로. 


정말로 한 순간이었어. 더 이상 회사에 돈이 없다는 말을 듣고, 어쩔 수 없겠구나 생각하고, 수긍할 수밖에 없어 고개를 끄덕이고 나니 끝이더라. 그 순간 나를 지탱해오던 월급과 직업, 사회적 신분이 한꺼번에 사라졌어. 끝나는 건 한 순간이었는데 끝났다는 걸 납득하는 데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다니, 직장을 잃는다는 게 사람에게 어떤 종류의 충격을 주는지 이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다른 데 가면 되지 왜 저렇게까지...'라고 생각하면서 뉴스나 다큐멘터리 화면을 바라보며 멋대로 판단하곤 하던 시절도 있었다. 단순히 한 회사를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된 것. 다른 데서 다시 시작하면 그만인 것. 실직은 결코 그것만을 의미하지 않더구나.                 


지난 15년이 그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동안 해왔던 일들, 쌓아온 경험으로 어딘가 새로운 곳에서 일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도통 들질 않는구나. 학교를 졸업한 뒤 공백이랄 만한 시간 없이 바로 취직을 해 쉬지 않고 일해왔는데도, 나는 그냥 그 세월이 없던 세월인 것만 같다. 


나와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심정이란 대부분 이렇겠지. 하루 중 가장 깨어 있는 시간, 에너지를 내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몽땅 회사에 내어주고도, 그게 끝난 순간엔 그동안의 시간이 전부 누구에게로 흘러갔는지 이해할 수 없어 어리둥절 뒤를 돌아보겠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들. 


이 막막함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무언가를 한다면 언젠가 빠져나갈 수 있긴 한 건지,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구나.      



직장을 잃은 대신 시간이 주어졌다. 회사가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하지만 시간을 쓰려면 돈을 함께 써야 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끝없는 상념과 우울을 감당하느라 나를 위한 일들은 겨우겨우 더디게 해나가고 있어.  


그래서인지 요즘은 자꾸만 오래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냥 그때는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돌아보는 차원이 아니라, 몇십 년간 한 번도 생각나지 않던 시간의 조각이 머릿속 어딘가에서 갑자기 떨어져나오곤 해. 기억이라기보다 습격처럼,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선명한 어떤 증거나 힌트처럼, 그렇게 자꾸만 기억이 밀려온다. 


어젯밤에도 잠들기 전 하나의 이미지가 그런 식으로 불현듯 떠올랐는데, 우습겠지만 그건 인공지능과 관련한 한 공상과학소설의 그림이었어. 뇌의 단면이라 여겨지는 그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 방학숙제로 써내야 했던 독후감용 소설의 표지 아니면 삽화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어. 요즘도 학교에서 그런 숙제를 내주는지 모르겠다. 과학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소설을 어쩐지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것만 같다. 몰입해서 그 책을 읽던 순간의 기분이 내 몸속에 아직도 남아있고, 나는 그 기억을 몇십 년간 잊고 살다가 마흔둘을 한 달 앞둔 지난밤의 어느 순간 갑자기, 정말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떠올렸던 거야. 


또 하나 네가 웃프다고 생각할 만한 나의 일상. 요즘 나는 종종 구청이나 주민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보곤 해. 덕분에 이곳에 산 지 5년 만에 내가 사는 동 이름의 유래를 알게 되었지 뭐야. 좋아요를 누르는 곳이 있었다면 아마도 주저 없이 눌렀을 것 같은 오래된 이야기를 가진 동네더구나. 평소의 나라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을 만한 각종 강좌들도 열리고 있었어. 요가, 필라테스, 사물놀이, 초급일본어, 중급영어, 수채화교실...... 분기에 6만원이 안 되는 저렴한 수강료를 받기도 하는 그 강좌들의 소박하고 단정한 이름들을 보면서, 나는 단 한 번도 들어가본 적 없는 주민센터라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 이렇게 무언가를 배워왔구나, 지금도 배우고 있구나, 배우면서 그들은 즐거울까, 이런 생각들을 한단다. 사람들은 초급일본어를 배워서 어디다 써먹는 걸까? 사물놀이라니, 사물놀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하는 사람들일까, 상상해보곤 하면서 말이야.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두려워하면서, 나는 계속 생각한다. 


너를 생각하고, 실직을 하기까지 내가 어떤 잘못된 선택을 했었나 생각하고, 그때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또는 다른 결심을 했더라면 나의 지금은 어땠을까를 생각하고,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구직 사이트를 드나들면서, 공공기관의 홈페이지를 구경하면서 나는 요즘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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