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 VS 도전
두 번째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매 달 적금이 늘어나는 것에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내면서 누구나 이렇게 산다며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였지만 왜인지 내 인생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하루는 왜 행복하지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결론은 무려 하루에 8시간 이상, 한 달에 20일 이상 하고 있는 나의 일이 도무지 즐겁지 않다는 것이었다.
맙소사...
인간의 수명은 점점 연장되고 있고 앞으로 적어도 30년은 넘게 소처럼 일해야 하는 데 지금 하는 일이 즐겁지 않다는 것은 20대 중후반의 나이에 불과한 내 인생에 '불행'이라는 낙인을 딱 찍는 것과 다르지 않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의 일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해보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왜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를까?’ 질문을 해보았고 아무래도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만큼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제법 단순한 분석이었지만 그렇게 홀린 듯 인터넷에 '워킹홀리데이'를 검색했고 워킹홀리데이 인포센터 사이트에서 '대만'을 보자마자 나는 이곳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왜 워킹홀리데이가 떠올랐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운명은 믿지 않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했던 어느 날 단순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해보다가 참으로 뜬금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당시 SNS에서 한창 유행하던 문구가 있었는데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최종훈 교수의 인생 교훈」이라는 글이었다. 아래의 문구를 아마 한 번쯤 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 행위의 정당성을 설명하기에 마침 딱 좋은 글이었다 :)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라
말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마라
줄까 말까 할 때는 줘라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마라
당시 친구가 어쩌면 도전이라는 이름의 도피가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도 있다. 부모님에게도 하나뿐인 막내딸이 겨우 사람 노릇하며 직장생활 잘하다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으셨을 것이다. (실제로 부모님을 설득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워홀 결심 후 1년 후에서야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게 아니면 내 인생은 흰색과 검은색만 있는 인생이 될 거라고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다양한 색이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나름 절실한 마음이 있었다. 운명이라고 도전이라고 합리화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도피든 도전이든 후회만 하지 말자고 했던 이 선택이 실제로 내 인생에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이 되었다.
날이 좋았던 2013년 10월, 대만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