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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출판 다른 Jul 22. 2022

<진격의 거인> 속 '거인'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우주는 넓고 종족은 많다

 판타지 소설과 SF 소설은 오래전부터 사회와 거리를 두고 사회의 쟁점을 탐구하는 장이었다. 외계 종족과 가상 종족은 우리 사회의 특정 집단을 대변했고, 그 집단의 결함을 폭로하거나 그 집단의 문제를 더 흥미롭게 포장했다.


 대개는 허구의 종족에게 현실 세계의 인종적인 특징을 부여하게 된다. 예컨대 현실 세계에서 누구나 특정 집단 고유의 것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을 허구의 종족의 특징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허구의 종족으로 그 집단을 대변하려는 의도가 없거나 그 집단의 이야기를 전혀 할 의도가 없을 때도 이런 식으로 인종적 특징을 활용하기도 한다.








 특히 평가가 어려운 사례가 이사야마 하지메의 《진격의 거인》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에르디아라는 종족은 누가 봐도 유대인을 대변한다. 옷에 별을 달아야 하고, 게토에서 거주하며, 나치 정권을 연상시키는 권력 집단에게 합법적으로 살해된다.


 이 이야기는 그들을 편견과 외국인혐오증의 희생자로 다루면서 연민을 표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등장인물들이 에르디아인을 탄압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에르디아인이 한때 세계를 지배했고 당시에는 다른 집단을 탄압했으므로, 현재 그들이 탄압당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친다. 게다가 에르디아인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거인’으로 변신할 가능성도 있다.




 에르디아인을 유대인과 유사하게 설정할 때의 문제점은 명백하다. 과연 알레고리의 끝이 어디인가? 이사야마는 유대인이 한때 세계를 지배했고, 20세기에 그들이 핍박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런 설명은 너무나도 진부한 인종차별주의적 장치들을 불러낸다. 


 유대인이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은 아주 오래된 거짓말이다. 이사야마는 유대인이 내적으로는 괴물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이런 비유와 은유가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인종차별주의적 암시가 깔려 있어서 불편할 수 있다.






 허구를 창조할 때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특정 인종의 이미지와 쟁점을 참고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가 특정 집단의 이미지만 차용하고 그 이미지가 불러올 결과를 무시하면 주제적으로 끔찍한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 


 현실 세계의 복잡한 인종 문제를 허구 세계에 투영하겠다면 사람들이 작가가 원하는 부분만이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그런 방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각오해야 한다.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할 수도 있다.




─ 《작가를 위한 세계관 구축법 구동 편: 계급, 종족, 전투》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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