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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담 Mar 10. 2023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찾는 방황의 의미

장강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 책리뷰

내가 뭘 하고 싶으냐가 정말 중요한 거지.
돈이 안 벌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좀 덜 억울할 거 아냐.

그런데 난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몰랐어.

-소설, 한국이 싫어서 중에서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내가 뭘 하겠다고 나서건 그게 성공할지 성공 안 할지는 몰라. 지금 내가 의대 가서 성형외과 의사 되면, 로스쿨 가서 변호사 되면, 본전 뽑을 수 있을까? 아닐걸? 10년 뒤, 20년 뒤에 어떤 직업이 뜰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앞으로 전망 얘기하는 건 무의미한 거고, 내가 뭘 하고 싶으냐가 정말 중요한 거지. 돈이 안 벌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좀 덜 억울할 거 아냐. 지명이가 그렇게 자기 진로를 선택한 거지. 그런데 난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몰랐어.

- 소설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 주인공 계나의 말



장강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2015년작) 후반부 주인공 계나가 하는 이야기이다. 예측이 어려운 시대이고 무엇을 하면 잘 된다는 보장을 선뜻하기 어려우니, 차라리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낫겠다는 말이 공감이 간다. 그리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몰랐어,라는 독백도 마음에 많이 와닿는다. 아이들에게 꿈이 없다고 나무랄 것이 없다. 마흔 살 훌쩍 넘은 어른인 나 조차도 또렷하게 나는 ㅇㅇ이 하고 싶어!라고 말을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내가 뭘 하고 싶으냐가 정말 중요한 거지.

돈이 안 벌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좀 덜 억울할 거 아냐.


지명이가 그렇게 자기 진로를 선택한 거지.

그런데 난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몰랐어."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보태보자면 꼭 결과가 명확한 길, 선명한 길만이 의미 있는 과정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의미는 목표를 달성한 이후에 나만의 깃발을 꽂을 때도 찾을 수 있지만 모호한 길, 정답이 없는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는 과정 그 자체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큰 의미와 가치를 전해 줄지도 모른다.



소설 속 계나는 좋은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집이 잘 살지도 않는다. 하지만 직장까지 통근거리가 멀지 않아야 하고 사는 곳 주변에는 문화시설이 많기를 바란다. 월급을 받기 위해 하는 일에서도 최소한의 자아를 찾을 수 있기를 원한다. 대단한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때그때 삶에서 누릴 것을 누리면서 자존심 지키고 당당하게 잘 살고 싶은 모호한 욕망과 자존심을 포기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한국을 떠나려 한다. 이곳에서는 그렇게 자존심을 지키며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자기 계발서, 또는 성공 스토리가 담긴 경제경영서라면 소설 속 인물인 계나는 한계를 극복하고 어떤 커리어를 쌓거나, 유명해지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결과와 함께 교훈을 전달하면서 끝났을 것이다. 성공할 수 있는 ㅇ가지 STEP, 반드시 해야만 하는 ㅇㅇㅇ처럼 비법과 노하우, 메시지에 틀을 입히고 이런 평범한 나도 했으니 따라만 하면 너도 해낼 수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장강명 소설 속 계나는 그렇지 않다. 냉정하게 말하면 한국에서 특별한 스펙 없는,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없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계나와는 달리 집안에는 부족함이 없었고 바라던 일을 찾아 시험에 붙어 취업에 성공한 남자친구 지명이가 결혼을 하자고 붙잡지만 눈물을 머금고 뿌리치고 호주로 떠난다.


자산도 현금흐름도 (정확한 소설 속 표현은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도저히 현실에서 그것을 다 이룰 수 없는 한국을 떠나기로 한다. 한국을 떠나서 "Have a nice day"로 스스로에게 인사하는 것과 함께 소설은 끝난다.



계나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환경을 바꾸는 선택을 한 것처럼,

소설을 읽는 우리도, 아니 나 역시도 변화를 원한다면 선택을 해야 한다.




엄마도 직장인도 그 어디에도 또렷하게 속하지 않는다. 전업맘도 워킹맘도 휴직맘도 그 무엇도 나를 표현하기엔 모호하다. 길을 벗어나 지내고 있다. 회사를 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 찾고자 애를 쓰고 있다. 아니 애를 쓰는 것 조차 아마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결과와 성과가 지난 시간의 노력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시간을 살아왔다면 지금은 혼란스러운 과정 그 자체, 순간에서 의미를 찾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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