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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담 Jan 27. 2024

꿈같은거 그런 거창한거 말고

내가 일을 하는 이유





"걔는 꿈이 있더라. 나중에 커서 무슨 학자가 될거래. 지구랑 고고학을 좋아한대."

"그래? 벌써? 꿈을 일찍 찾았네 그 친구는."


중학생 아이가 반 친구의 이름을 꺼내며 입술을 샐쭉거린다. 학기초 아이로부터 여러번 이름을 들었던 터라 나도 익숙한 이름이다.


"꿈.. 그래. 꿈이 있으면 좋지.

그런데 지금 꼭 꿈이 없어도 괜찮아."


아이에게 하는 말이었는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는 말을 했다. 꿈을 찾는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이 말은 삼켰다. 어릴적 품었던 순수한 꿈들이 차례 차례 떠올랐다. 그리고 꿈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는 내가 있다. 지금 일을 하고 있어서 그래서 더 꿈을 찾는게 어려운걸까? 꿈은 어릴수록 찾는게 더 쉬운 일인걸까? 아니, 꿈이 꼭 직업이나 일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주입한 사고방식인지도 모른다.



나 혼자만 꿈이 없다 고민하는건 아닐것이다. 모두가 꿈을 품고 꿈을 이루고자 살아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지금 하는 일에 마음을 다하고 있는지, 그게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학을 졸업하고 재즈클럽을 운영했다. 음악을 좋아했지만 음악이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그에게 재즈클럽 경영은 생업을 위한 일이었다. 전력을 다해 재즈바 운영을 했고 가게가 점차 잘 되어가자 불현듯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그런 취미로나 하는 것 같은 장사가 잘 될 리 없고, 세상물정 모르는 나에게 경영의 재능 같은게 있을 리 없다고 짐작했던 것 같지만, 그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 특별히 경영의 재능이 있을거라고는 나 역시도 생각하지 않는다.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길이 없었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노력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무라카미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문학사상> 50p




꿈같은거..

그렇게 거창한거 말고,

목표 정도면 되지 않을까?


월급을 받으면 뭔가 산다든가

휴가를 받으면 어디에 간다든가



일드 <언내츄럴> 4화에 나오는 법의학자 여주인공 미스미의 대사이다. "미스미씨는 왜 일하세요?"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법의학자 일을 하고 있는 미스미.  의대생 쿠베는 의사가 되는 길목 앞에서 꿈이 없다며 방황하고 있었다. 쿠베가 미스미에게 왜 일을 하느냐 물었고, 그에 돌아온 미스미의 대답은 심플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주중에는 출퇴근을 한다. 토요일 새벽 알람소리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운다. 어두운 거실 한켠에서 잔잔한 재즈피아노 플레이리스트를 켜두고 글쓰기 창을 띄웠다. 플레이리스트의 화면과 어둠을 밝히는 캔들 워머의 불빛이 지금 이 고요한 공기를 전하는 듯 하다. 곡선이 부드러운 하얀 머그잔에 따뜻한 차를 따라 자리에 앉는다. 평일에 마주하는 검정 화면 색색깔의 자바스크립트 코드 대신 하얀 글쓰기창을 마주하자 문득 아직 오지 않은 올해 여름이 떠올랐다. 이번 여름 휴가는 기간을 길게 잡고 해외에 다녀와야지. 생각하니 마음이 벅차오른다.


꿈이라는건 꿈을 찾고자 애를 쓸 때 보다, 일상을 보내는 어느 순간에 불쑥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꿈같은거 그렇게 거창한거 품지 않아도 우리는 꿈과 가까워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말에 글을 한편 쓰고 마무리짓는 새벽시간을 쌓아가다보면 하루키처럼 불현듯 꿈이 찾아올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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