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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담 May 02. 2024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면

새로운 장르의 재료를 찾아나설 때.


월요일에서 금요일은 출근을 하고 하루 9시간 이상을 직장에서 보낸다. 올초에 마음먹었던 만큼 글을 잘 쓰지 못했다. 출근을 해서 쓰지 못한다는 건 가장 갖다 붙이기 편한 핑계일지도 모른다.


"요새 책이 정말 잘 안 읽혀요."

"음.. 너무 비슷한 책만 읽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다정한 얼굴로 따끔한 일침을 놓아준 다독가 친구의 말 덕분에 그래, 다시 책을 읽어보자, 마음먹을 수 있었다. 장르를 넓혀서, 깊이를 더해서 독서를 해 봐요-라고 나 혼자 내포된 말의 의미를 해석했다. 당연히 내 해석이 틀렸을 수 있다.



-글이 잘 써지지 않아, 라는 말 대신.

핑계를 대고 투정을 부리는 대신 새로운 인풋을 찾기로 했다. 공대생출신에 지금도 SW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는 미명아래에 소설, 고전, 인문, 경제 분야는 여전히 잘 안읽히는 어려운 책이다. 실용서와 재테크책을 비롯해 한동안 새로운 배움을 위해 몰아서 읽었던 마케팅과 경제경영서는 술술 읽히는 편이었지만 그외 분야의 책을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인풋을 넓히기로 마음먹고 실행한 첫 번째 선택으로 스티븐핑커의 "빈서판" 독서모임에 참여했고 두 번째로 두산아트센터에서 운영하는 에디터에 지원했다. 우연인지 내가 찾고자 하는 삶의 방향성에 대한 영향이었는지 독서모임도 에디터 활동도 "인문학" 영역이다.


에디터로 참여하는 이번 시즌 두산인문극장의 주제는 "권리"이다. 두산인문극장 DO에디터는 4월부터 7월까지 4개월간 공연 1회, 강연 4회, 전시 1회 관람 또는 참여를 하고 sns에 리뷰를 남기는 활동을 한다.


첫 번째 에디터활동 참여를 위해 4/29(월) 부지런히 퇴근을 하고 종로로 향했다.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열린 "노동은 어떻게 권리가 되는가"라는 주제의 이준희 광운대 법학부 교수님의 강연이 있는 날이었다.




-배움의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규모가 큰 강의장 1층이 가득 찰 만큼 사람이 많았다. 월요일 저녁 7시 30분이라는 요일과 시간을 생각하면 더 놀라웠다. 직장생활을 하며 지나온 많은 고민들은 근원적으로 노동자라는 위치에서 시작된 것이었는데, 고민의 무게에 비해 노동과 권리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 부끄러울만치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이 많았다.




-노동이 어떻게 권리가 되었는가


주제만 보면 지루할 것 같아 기대를 1도 하지 않고 참석했다. 강연은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몰입도가 높았다. 노동이 어떻게 권리가 되었는가, 라는 주제로 이렇게 흥미롭고 몰입력 강한 강의를 들을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강연을 마치고 현장 Q&A시간이 있었다. 질문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마이크 쟁탈전에 가까울 정도로 뜨거웠던 객석의 질의응답 시간의 후끈한 열기에 또 놀라고 말았다.


강연을 들으면서 산업혁명 시대 영국의 노동법 제정 과정과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노동이 어떻게 법에서 권리로 지정되었는지 시대의 흐름과 함께 알 수 있었다.


강연을 듣는 동안 내가 지식노동자이자 노동법 보호의 테두리 안에 있는 직장인으로 십수 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오면서 당연하게 누렸던 권리들이 떠올랐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휴직 이후 자연스럽게 이어진 복직과 육아휴직급여. 그리고 주 52시간 도입과 재택근무, 유연근무제, 퇴직금까지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이지만,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쑥불쑥 힘들었던 마음도 생각이 났다. 산업혁명시대처럼 사용자가 일하기 힘들어 도망친 노동자를 감옥에 가두고 채찍으로 후려쳤다고 한다. 다시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시절의 육체적 고통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비슷한 면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시대에 사용자(사업주, 회사)는 노동자를 가두지 않는다. 하지만 도망칠 수 없다는 대전제 아래에 노동자인 내가 나를 가둔 것은 아니었을까?


월급/업무/성과 라는 이름으로 묵직한 사슬을 내게 채우고 더 열심히 하고 더 잘하라며 채찍을 휘두르고 후려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 그렇게 일하는 거지, 뭐가 힘들어?


그것은 오직 나 스스로 만든 감옥이었을까? 누구인들 자신을 그렇게 만들 수 밖에 없는 성공과 성과를 우선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의 영향도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는 건 


역시 핑계였는지 모른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건 글을 쓰기 위한 재료 수집에 소홀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맛있는 빵을 굽기 위한 재료를 구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장비탓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 비어버린 부엌 찬장을 채우러 장가방과 지갑 하나 챙겨서 나가볼까?




*사진의 출처 - 두산아트센터 제공.

#두산아트센터 #두산인문극장 #권리 #DO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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