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자유에 대한 불안
수경의 고무끈을 당겨서 조인다. 꽉 조이는 느낌이 들어 눈 주변으로 동그란 수경 자국이 나겠구나, 생각한다. 하지만 더 느슨하게 끈을 늘리면 수영을 할 때 꼭 물이 한두 방울씩 들어온다. 꼭 낀 그대로 수경을 내려 고무 흡착판을 한번 더 누른다. 두 귀가 물속에 잠기고 주변의 소리가 차단된다. 수영에 매료되었던 이유이다. 여러 소리가 천장으로 높이 부딪히며 웅웅 울리던 수영장 소음이 고요한 적막으로 바뀌는 순간. 두 발을 차면서 앞으로 나아가자 잔잔한 물살이 얼굴에 닿는다. 머리 위로 곧게 뻗은 두 팔과 손바닥 안으로 들어온 물을 부드럽게 움켜쥐고 손을 아래로 뻗는다. 물줄기는 어느새 손가락 끝으로 부드럽게 흩어진다. 수영을 처음 배울 때 발을 세게 차면 몸이 앞으로 나가는 줄 알았다. 수영을 할 수 있게 된 건 몸의 힘을 빼고 손과 발끝에서 물의 흐름이 느껴졌을 때였다. 수영을 하는 순간 나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금세 호흡이 가빠져 10초, 20초에 불과한 짧은 시간일지라도 내가 나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그 느낌이 있었다. 힘을 빼고 중력을 거슬러 물속에서 두 손과 두 다리를 사용해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이 즐거웠다.
수영을 다시 배운 건 가장 최근에 휴직을 했던 2년 전이다. 나를 돌보겠다는 생각에 수영 레슨을 다녔다.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를 가면 나는 산책을 하고 카페에 가거나 수영장에 다녀왔다. 편안한 시간이었다. 퇴근이나 프로젝트 일정 과 같은 내가 컨트롤하기 힘든 외부의 큰 일정에 쫓기지 않는 날들이었다. 일을 만들자면 만들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출근을 안 하면서 아이들 돌봄이나 살림 등의 일들이 모두 내 몫이 되어 사라진 시간이 많기도 했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하루는 길었는데 그리 길지가 않았다. 어쩌면 일상생활 만으로도 바쁘다는 말속에 숨고 싶었을까. 사각거리면서도 포근한 이불속에 폭 파고들어 가는 시간들은 편했다. 반복되는 잔잔한 시간의 무료함을 느낄 즈음 책 쓰기를 시작했다. 블로그 강의를 함께 하고 있던 우리는 두 달 동안 매주 토요일 새벽에 모여 책 쓰기 수업을 들으며 주제부터 목차, 기획서까지 차근차근 진행을 해나갔다. 목차를 고쳐 쓰고 기획서를 쓰고 다시 쓰던 시간들. 모여서 피드백을 하고 함께 책을 쓰던 각자가 써온 초안에서 최선의 안을 선택하고 합치면서 하나의 목차, 하나의 기획서를 완성했다. 초고를 분량을 나누어 쓰고 출판사에 투고할 즈음에 나는 회사로 복직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 목차와 기획서, 초고에 출판사의 카피라이팅과 기획이 더해져서 공저책이 출간되었다. 올해 봄의 일이다.
책 쓰기를 할 때 강의와 코칭을 쭉 병행하는 것은 휴직 중이라서 집에 있으면서도 가끔 버거웠다. 그렇지만 난 그 시간에 푹 빠져 지냈다. 잘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서툴렀고 잘 쓰지 못했다. 그럼에도 한글문서를 열고 타닥타닥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빈 페이지를 채우는 그 시간만큼은 자유로웠다. 초고를 쓸 때 처음부터 잘 쓰려고 하진 않았다. 투박한 그 무엇이든 꺼내어 쓰려고 했다. 책 한 권의 메시지라는 큰 줄기와 목차별 주제에 따른 맥락에서 벗어나면 안 되었다. 목차에 맞추어 써야 할 내용과 가이드라인이 있다 보니 어떨 때는 오히려 더 수월하기도 했다. 문장을 채워가면서. 글쓰기에 매료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나답다는 모호한 표현에 글쓰기를 더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형태로든 내 의지로 완성해 나갈 수 있다는 자유로움 때문이었을까.
모처럼의 재택근무. 해가 낮게 드는 거실의 낮 시간을 온전히 누렸다.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과 편한 것은 동의어가 아닌데 편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라 착각했다. 하얀 화면을 띄워 놓고 뭘 쓰지? 고민하는 시간은 즐겁지 않다. 무엇이든 써도 되는 무한한 자유가 있음에도 오히려 속박당하는 느낌이 먼저 찾아온다. 백지의 공포처럼 자유로운 하루의 시간도 공포였다. 그 공포가 두려워 편안함 속에 숨어들었다. 나는 이미 길들여진 것일까. 정해진 틀 안에서 제한적으로 움직이는 자유로움을 추구해 온 것일까. 시간이 온전한 내 것이 된다는 사실은 여전히 두렵다. 한편으로는 기대하지만 다른 마음 한 구석에서는 자유가 찾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책을 쓰면 책이라는 결과물에 성취감을 온전히 누릴 줄 알았다. 결과물의 뿌듯함 이전에 내가 더 소중히 여기는 건 목표를 이루고자 제한된 시간 안에 에너지를 쓰는 일이었다. 이 과정을 늘 외부의 시스템에 의존해 온 나는 스스로의 의지로 해내는 사람들을 질투했다. 지나치게 성실하다며 깎아내리기도 했지만 부러운 마음이 먼저였다. 목표를 세우고 계획적으로 움직이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의 성실함은 빛이 났다. 그것이 갖고 싶어서 마음이 저릿해져 왔다. 용기가 없어 이불속 안락함에 숨으면서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던 이유일 것이다.
"왜 그런 거 있잖아. 소를 어릴 때부터 목줄로 묶어서 키우면 다 커서 목줄이 없어도 안 나간다며. 내가 꼭 그런 것 같아."
내가 만들어가는 생각의 흐름, 단어와 문장의 조합에서 즐거움을 만끽하지만, 큰 틀에서 기획을 하고 추진해 나가는 일은 여전히 겁을 먹고 있다. 이젠 손을 더 멀리 뻗어야 할 때 일까. 호흡이 수월해지고 손과 발 동작을 숙련하여 수영을 더 잘하게 되면, 수영장을 벗어나 호수에서 수영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이 두려움도 작아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