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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락울 Oct 17. 2019

옷을 다섯 박스 기부했습니다.

생각보다 쉬운 비우기, 미니멀리즘


"안 입는 옷 좀 버려라" 라는 말에 "다 입어"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산더미처럼 옷이 쌓였죠. 여름이 지나고 나니 이 많은 옷들 중에서 정작 입는 옷은 몇 벌 안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번 여름에 입은 옷들만 골라내니 작은 상자에 다 들어갈 정도더군요. 나머지 옷들은 박스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크게 두 박스가 나와 기겁을 하고 나니 남은 건 겨울 옷. 


아 버려야겠구나. 


그동안 마음먹기만 했던 미니멀리즘을 시도해볼 기회였습니다.


색이 바래거나 보풀이 일어난 옷은 버리고 괜찮은 옷들 중에서 손이 가지 않는 옷을 골라 박스에 담았습니다. 겨울옷이라 부피가 있어서 그랬을까요? 이번엔 박스가 세 개 나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옷무덤 속에 살았습니다.


세탁소에서 쓰는 얇은 철로 된 옷걸이는 부식이 되면 가루가 흩날립니다. 모두 버리고 원목으로 된 튼튼하고 오래 쓸 옷걸이를 골라 30개 주문했습니다. 겨울 옷을 차곡차곡 걸어놓았더니 옷걸이가 열개 이상 남습니다. 매일 터질 것 같던 옷장이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넉넉하게 비었습니다. 빈 공간을 보니 뿌듯해집니다. 


사실 잘 입지 않아도 아까운 옷들은 아직 옷장에 걸려있습니다. 이번 겨울이 지나도 입지 않는 옷들도 기부할 예정입니다. 그럼 옷걸이는 더 남을 것이고 옷장은 더 넉넉하게 비겠지요. 제 최종 목표는 여름 겨울 옷을 모두 옷장에 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비워내는 겁니다. 


이번 여름에, 이번 겨울에 이 옷은 한 번도 안 입었는데. 오늘 입고 가야 하나? 다른 거 입고 싶은데...


이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정말 입고 싶은 옷, 손이 가는 옷만 제 옷장을 내어주려고요. 옷이 적어지니 더 아끼게 됩니다. 대충 접어 구겨 넣던 습관도 고쳤습니다. 






양심고백 하건대, 처음 미니멀리즘을 맞닥뜨렸을 때 참 별게 다 유행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더러운 운동화를 비싸게 파는 브랜드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책을 한 두권 읽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와 편하겠다-싶더군요. 그리고 그들의 정돈된 삶이 부러웠습니다. 질 좋은 것만 골라 소비하고 소유하는 삶은 많은 것을 소비하고 소유하는 삶보다 멋져 보였습니다. 


옷에 관심이 많아서 이 생에서 미니멀리즘은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적은 옷으로도 이것저것 잘 매치해서 전보다 깔끔하게 입고 다닙니다. 다다익선은 옛말인 거죠. 


동경만 했던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 들여놨더니 이렇게 좋아서 그렇게 좋다고 한 거였구나 새삼 깨달았습니다.


정말 좋았거든요. 빈 옷장, 그럼에도 고민하지 않고 고를 수 있는 선택지들. 고민은 줄고 만족은 늘었습니다.






집에 책도 한 박스 쌓여있습니다. 


방을 카페컨셉으로 꾸미면서 책을 줄이고 줄였는데도 책장 하나를 가득 메우더군요. 여기서 몇 개나 앞으로 더 읽을까 생각해봤더니 몇 개 되지 않습니다. 몇 년째 읽지도 않고 보관한 책만 가득이었습니다. 결국 이 책들도 팔기 위해 정리를 했습니다. 알xx 중고서점에서 나 대신 열심히 읽어줄 사람이 나타나길 바랄 뿐입니다. 


가끔 삘이 꽂혀 읽는 책, 궁금한 게 있으면 찾아볼 유익한 책 몇 권만 남겨두니 책장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방이 제가 꿈꾸던 카페 컨셉에 한걸음 더 성큼 가까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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