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 에밀리를 위한 세레나데 같은 그림 '키스'
소설 「클림트」는 오스트리아의 가장 사랑받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의 영원한 연인, 에밀리 플뢰게에 의해 클림트에 관한 자료는 불태워져 그의 사생활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일부이다. 클림트가 죽은 후 클림트의 친자확인을 의뢰한 사람은 모두 14명이었고, 클림트가 지정한 유산 상속자였던 에밀리는 클림트의 명예를 보호하고 클림트 사후 벌어지는 일들을 해결한다.
소설 「클림트」
소설은 에밀리 플뢰게와 클림트의 사랑을 만남에서부터 절정, 어긋남과 헤어짐 회복과 (미)완성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독특한 그의 그림체와 같은 그의 사랑은 꽤나 일반적인 궤도를 벗어난 모습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클림트의 걸작 「키스」의 주인공이 본인과 에밀리라는 것,
에밀리는 어떤 식이든 클림트의 뮤즈였다는 것,
에밀리와 그는 27년간 플라토닉 러브를 이어왔다는 것,
그리고 그의 마지막을 지킨 단 한 사람이 에밀리였다는 것이다.
소설은 몇 가지의 사실들을 토대로 하여 에밀리의 관점에서 둘의 사랑을 해석하였다. 가장 특징적이었던 것은, 여자의 입장에서 '사랑', '성(姓)', '일', '결혼'에 대해서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것이고, 그 대상이 희대의 예술가인 클림트이기 때문에, 그의 일생과 그림들과 함께 흥미 있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클림트가 자라온 환경과, 그가 에밀리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에밀리가 클림트의 작품과 그의 인생에 미친 영향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한 여성으로서 그녀가 선택한 삶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더욱이 소설이 가진 매력은 넘쳐난다.
내용과 해석
"그는 가식 없이 세상을 그렸다. 그의 그림 속에서 사람들은 나이나 사회적 계급, 사회 통념을 떠나 자기가 고른 상대라면 누구 하고나 자유롭게 사랑을 나눴다".
에밀리의 구스타프와 그의 그림에 관한 첫인상이다.
전형적인 중산층 계급의 세 딸 중에 막내로 태어난 에밀리, 그녀와 클림트는 그녀의 친언니와 클림트 남동생의 결혼으로 사돈으로 만나게 된다.
당시 빈에서 이미 이름을 알린 상류층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였던 클림트. 당시 에밀리의 나이는 열일곱, 클림트는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바깥세상에서 만난 남자, 호기심을 갖게 되는 상대였다. 사랑에 대해 미처 알기도 전에, 그의 그림과 재능에 매료되었던 에밀리, 그녀는 운명처럼 그에게 빠져든다.
"난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어요.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어요. 그저 세상이 더 아름다워졌으면 좋겠어요. 그뿐이에요. 나만의 것이라고 할 만한 걸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다면, 옷을 만들어도 좋겠죠".
이를 들은 클림트는 열일곱 소녀의 꿈을 가벼이 넘기지 않는다. 이후 에밀리가 당시 20세기 초, 여자로서는 매우 드물게 100여 명의 직원을 둔 디지이너로서 성공하기까지, 후원자이자 사업 파트너로 그녀를 도운 클림트. 그녀의 드레스의 스케치를 맡아주고, 그녀에게 자신들의 고객들을 소개해주고 인맥을 넓혀준 것도 클림트이다. 이후 에밀리와의 관계와 그녀와의 비즈니스는 클림트가 장식미술에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된다.
"나는 그와 사랑에 빠졌다.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나와 결코 결혼해 주지 않고 내게 아이 없는 독신 여성의 운명을 지워줄 늙다리 바람둥이가 아니라, 내게 꽃을 보내 주거나 우리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쓰는 순진하고 성실한 내 또래의 상대와 연애를 하고 싶었다".
열일곱, 순진무구한 에밀리의 앞에 어느 날 나타난 클림트는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 방탕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스물아홉 청년이었다. 그런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녀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 선택을 하는 것인지 그녀는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막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지만 난 괜찮다고 말했다. 내가 저지른 짓의 무게가 비로소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소설에서는 에밀리와 클림트가 단 한 번이지만, 성적인 관계를 가진다. 그리고 그녀의 유일한 상대였던 클림트.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부분으로, 에밀리와 클림트의 특별한 사이를 상징으로 보여주고 싶은 의도였을까 싶다.
그러나 실제로 클림트의 사후에 에밀리에 의해 공개된 둘 사이에 주고받은 400여 통의 편지를 보면, 에밀리와 클림트는 어떤 성적인 관계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27년간이나 플라토닉 사랑을 유지했다는 둘의 관계. 하지만 알려진 것은 그것뿐,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또는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아니면, 당연히 섹슈얼한 관계였을 거라는 해석까지도.
평소 자신에 대해 말하기도, 글을 쓰기도 싫어했던 클림트. 그는 꾸준히 에밀리에게 편지를 보낸다. 바람둥이였지만 지고지순한 사랑도 꿈꿨던 클림트.
둘 사이에는 사랑스러운 조카딸 헬레네 플뢰네가 있었고 어쩌면 그들은 조카딸로 하여금 애매한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린 조카딸이 둘 사이의 염문을 가려줬을지도 모른다.
클림트의 단 하나의 사랑, 에밀리 플뢰게
에밀리에 대한 해석은 클림트가 그린 그녀의 그림만큼이나 단순하지 않다.
소설에서는 그녀는 끝내 클림트의 자유분방함을 이해하고 용서해줄 정도로 지고지순하고 일편단심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때로는 엄마처럼, 누이처럼, 둘도 없는 친구처럼 클림트의 곁을 지키고 지지해 준다. 언제든 클림트가 원할 때 있어준 에밀리, 클림트를 기다리고 기대하며, 사랑에 빠진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대의 해석으로는, 그녀는 시대에 드물게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클림트와 결혼이나, 연인관계를 꿈꿀 만큼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녀가 클림트를 처음 만난 시기, 이미 클림트는 당대의 주목받는 화가였으나, 계급으로 따지면 클림트는 그녀가 선택해서는 안될 상대였고, 사랑에 전부를 걸었던 언니의 결혼. 그리고 곧이은 형부의 죽음, 조카의 탄생으로 느끼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한편, 그의 관한 소문이나 그가 뿌리고 다닌 염문들은 어린 에밀리에게 흥미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서로를 알게 된 후, 예술적 공감과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소통, 그리고 사업 파트너로서, 오랜 기간 슬픔과 기쁨을 나눈 친구로서 인연을 유지한 클림트와 에밀리.
어쩌면 그녀는 클림트의 여인이 아니라 스스로의 이름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클림트의 아내' 대신 '에밀리 플뢰게'를 선택했을 것이다.
매우 다른 두 개의 해석, 그만큼 알려진 사실(fact) 매우 적은 둘에 관한 이야기. 누군가는 정신적인 사랑을 추구하고 독립성이 강한 에밀리였기에, 클림트의 오랜 연인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바로 그런 부분 때문에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 못한 채 미완성으로 남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화
에밀리의 초상화에는 기존의 클림트의 작품들과 구별된 점이 있다. 바로 그림 속의 에밀리가 입고 있는 옷은 실제 그가 스케치할 당시 에밀리가 입고 있던 옷이 아니라, 클림트가 가상으로 입힌 옷이라는 점이다.
에밀리는 클림트가 그리는 초상화를 매우 기대했으나, 그 완성본을 보고 실망하여 자신이 가지지 않겠다고 한다. 결국 클림트에게 다른 곳에 팔아버리라고 하고, 클림트는 이 그림을 빈 국립미술관에 팔게 된다. 그녀가 느끼기에 그림이 차갑고, 그녀의 옷과 머릿 장식은 마치 뱀과 같이 느껴졌다고 한다.
정신적인 사랑은, 육체적인 그 어떤 섹스보다도 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더욱 영롱하며, 위대하다.
- 에밀리 플뢰게(Emilie Louise Floge)
에밀리가 독신주의자였다는 설도, 클림트와 결혼하고 싶어 했다는 설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러나 그녀가 추구했던 '정신적인 사랑'은 사실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그러한 가치관을 갖게 된 것도 어쩌면 그녀가 처음 만나 사랑을 느꼈던 클림트, 그의 방탕한 생활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을까?
한편, 에밀리를 만나기 전부터 방탕한 생활에 젖어 있던 클림트. 그는 단 하나의 사랑 에밀리를 만난 후에도, 변화하지 못하고 육체적 사랑을 즐겼던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를 그리 내몬 것 또한 에밀리였을까?
어떤 연인보다도 강렬하고 운명적으로 보이는 둘의 사랑이, 끝내 완성되지 못하고, 그 의미조차 모호한 채 남겨진 까닭은 무엇 때문이고, 누구 때문일까?
클림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일찍 아버지를 여읜다. 어머니와 누이는 몸이 약하고 정신병이 있었고, 그가 의지했던 남동생마저 결혼한 지 1년 만에 처자식을 놔두고 세상을 떠난다. 그에겐 책임져야 하는 가족들이 있었고, 그가 책임지지 않은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낳은 사생아들도 있었다. 에밀리는 그에게는 가족이었고, 엄마이자 누이였다. 그의 고됨을 나누고 싶지 않은 상대였고, 그는 언제나 에밀리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했다.
키스
"긴 옷을 걸친 남자와 포옹하고 있는 인물을 에밀리 플뢰게와 닮게 그린다면,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추문과 억측이 난무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결과를 염두에 두고 에밀리에게 그림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는 뭔가 행동을 취하고 싶고, 선언하고 싶다. 최근 들어 그녀가 자기 일에 매달리고 여행을 하느라 분주해지면서 그의 곁에서 빠져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에서는 클림트가 에밀리와 자신의 키스를 그리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멀어져 가는 에밀리와 그녀를 붙잡고 싶은 클림트.
클림트 그림의 특징은 관능적이며, 자유롭고 직설적인 표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정신적인 사랑을 추구했던 에밀리, 클림트는 에밀리 몰래 다른 여자들을 만나며 관능적인 그림을 그렸다. 클림트는 에밀리가 알지 못하게 바람을 피우고 사생아까지 낳았고, 이를 알게 된 에밀리는 그에 대한 분노에서 그에 대한 열정으로 감정이 변모하였다가 냉정함으로 감정이 흐른다. 에밀리는 클림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고 그의 곁을 떠나게 된다. 에밀리와 클림트가 만나지 않은 2년 동안의 기간에 완성한 것이 바로 이 키스라는 작품이다.
클림트는 에밀리가 자신을 떠날 것 같은 두려움과 위태로운 사랑을 '위험한 낭떠러지 끝에서 키스하는 두 남녀의 모습'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특히나 입술을 굳게 다문 여자를 안고 키스하는 남자에게 클림트 자신의 진심을 담아낸 모습이다.
사랑의 본질은 금과 닮아있다.
영원함, 닳지 않는, 특별함.
난 키스를 보면, 그 찬란한 황금빛이 나타내는 '사랑'이라는 황홀함 감정이 그대로 전달된다고 느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클림트가' 말하고 싶은 '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화려한 색감과 강렬하고 적극적인 형상 때문에 그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 속 에밀리는 목이 반쯤 꺾어진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절벽 끝에 서 있다. 벼랑 끝에 힘주어 세운 발끝이 왠지 그녀가 위태로운 상태에 있다는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하얗고 가느다란 그녀의 발목과 다소곳이 드러난 어깨로 그녀의 여성미를 보여주고 있다.
위태로운 절벽 끝에 자리 잡고 있는 그녀와는 반대로 절벽 안쪽의 클림트는 꽃이 가득 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클림트는 언제든 그녀를 벼랑 끝으로 밀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 위치인 동시에, 그녀를 꽃밭의 주인공으로 만들 수도 있는 상징적인 위치이기도 하다.
그녀가 그녀의 두 발로 자리에 선다면 절벽 끝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된다. 그녀가 무릎을 낮춰 그에게 기대었을 때 그녀는 꽃밭의 주인공이 된다.
그가 입고 있는 도톰하고 묵직한 가운으로부터 둘을 감싸듯 둥글게 이어지는 형상은 마치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이어져 있는 모습이다. 그는 그녀를 절벽 끝에서 '보호'하고 있는 동시에 그녀를 '소유'하고 독점하고 있다. 클림트의 가운에는 직사각형의 문양들이 있고, 에밀리의 드레스는 원형의 문양들로 꾸며져 있다. 성적인 의미는 기하학적으로 나타나 그 의미를 모호하고 가린 듯이 표현되고 있다. 그녀에게만큼은 조심스러운 그의 관점을 볼 수 있다.
그녀를 붙잡고 있는 그의 두 손은 마치 그녀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듯 보이지만, 한편으론 비스듬히 꺾인 그녀의 고개를 강하게 붙들고 있는 모습이다. 그의 손을 감싸고 있는 건지, 저지하고 있는 건지 모를 그녀의 두 손은 평온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수줍게 두텁게 감은 두 눈과는 다르게 꼭 다문 입술 역시 대조적이다. 그녀가 그를 원하는 것인지, 거부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모습이라, 역설적으로 수동적이다.
이게 그가 바라는 '이상'인 건지, '현실'인 건지 알 수 없는 그림. 이상이라고 하기에도 현실이라고 하기에도 무언가 부족하다. 그래서 아마 두 가지가 혼합된 것이 아닐까.
키스 그림의 스케치는 여러 번 수정을 거듭했다고 한다. 클림트가 죽은 후 그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에밀리가 발견한 스케치에서는 "에밀리.."라는 글씨가 쓰여있는 키스의 원래 제목-
사랑의 미완성
그는 키스를 완성한 후 에밀리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본다. 그러나 에밀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클림트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그러던 중 클림트는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정신을 잃어가는 순간에 급하게 에밀리를 찾았으며, 한 달 동안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에밀리는 그를 병간호하며 그의 곁을 지킨다. 에밀리는 한 번도 클림트에게 '사랑한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클림트도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사랑한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사랑 그 자체가 쓰라린 고통인 것은 분명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고통이라오. 헛된 사랑에 빠질 때마다 내 가슴은 쓰라린 비애로 무너져 내리지.
이 감정을 나처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다시없을 거요.” —'에밀리 플뢰게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1895년 2월 16일)
그의 고통은 어디로부터 온 걸까?
클림트가 떠난 후 에밀리는 클림트의 유언장에 따라 유산 상속자로서 그의 재산과 작품들을 관리하고 처분한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오스트리아 내 나치의 점령으로 대부분 소실되고 불에 타버리지만, 누군가가 개인 소장했던 작품들은 몰수되어 국가 재산으로 귀속되었다.
에밀리는 클림트가 죽은 후 30년을 더 살다가 죽어서는 그의 무덤 바로 옆에 묻힌다.
완성된 그림의 모습과는 달리 미완성된 둘의 사랑. 그러나 둘에게는 그것이 완성이지 않았을까?
(미)완성이 완성.
그 둘의 이야기는 오직 둘만이 알 것이다. 그림에 대한 감각도 마음도 사랑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