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별아star a Mar 26. 2019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성숙(mature)의 의미

어린이의 순수함으로 만나는 어른의 세계

"이런 법칙이 있어. '사랑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라는 법칙."
"누가 그런 소리를 했죠? 각자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 그게 같은 얘기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1951)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의 수학교수였던 루이스 캐럴이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가족과 시간을 보내던 중에 지인의 딸들을 위해 즉석으로 지어낸 이야기이며 앨리스는 그 딸들 중 한 명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후 줄거리에 작가가 전하고 싶은 사회적 메시지들을 담아 상상과 환상의 세계를 모험하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소설 초판본


일곱 살 앨리스는 언덕 위에서 책을 보고 있는 언니 곁에서 홀로 지루해하다 언니의 무릎에 누워 잠이 든다.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는 앨리스의 꿈속의 원더랜드(wonderland)이지만, 앨리스는 꿈인지도 모르게 깊이 빠져든 원더랜드에서 갑작스럽게 맞이하는 상황들을 스스로 헤쳐 나아가 야만 한다.


시계토끼가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는 것과, 미치광이 모자장수가 근대화에 따른 산업재해의 수은중독을 의미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알려진 캐릭터들이 내포하는 의미이다. 그 외에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다양한 캐릭터들과 상징들이 등장하는데, 독자들은 그것들이 가지는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해 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특히,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는 상징적 의미들은 오늘날까지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해석을 다양하게 하고 있으나, 분명한 건 소설이 주는 상상적 에너지가 매우 강렬하여 독자들의 해석이 다양해지며, 큰 틀에서의 스토리 전개 개인 성찰과 사회비판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사회와 인간에게 전하는 메시지, 즉, '성숙'의 의미와 가치를 독자가 스스로의 방식으로 답을 찾게 해 준다.





「개인적으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내용 전개의 구성이 매우 치밀하고, 그 내포하는 의미가 날카롭다고 느꼈다. 또한 때때로의 과격함도 있어, 그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해석해보고 싶은 강한 끌림이 있다





'토끼굴'이라는 공간적 설정


앨리스가 시계토끼를 따라간 곳에는 토끼굴이 다. 토끼굴로 들어간 앨리스는 깊숙하게 절벽 아래로 떨어지듯 구덩이 밑으로 끝없이 추락하며 내려간다. 그리고 그 끝에는 다른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딸린 방이 있다. 열쇠 구멍을 통해 저 너머의 공간을 훔쳐본 앨리스는 저 문 너머에 환상과 같은 세계가 있음을 확인한다. 토끼에 대한 호기심으로 들어간 곳, 그곳에는 앨리스가 기대하는 멋진 세계가 기다릴 것 만 같다.


환상의 세계가 있는 토끼굴은 곧 '구덩이'다. 구덩이는 밑으로 추락해서 맞이하는 공간으로,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원더랜드는 꿈과 희망과는 반대되는 부정적인 공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어른의 세계', 어린 앨리스가 커서 맞이하게 되는 현실의 공간으로, 당시의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며, 그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공간이다.


그 공간적 설정으로부터, 작가가 소설로부터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있다.
어린아이가 커서 맞이하게 될 어른의 세계, 현실, 그 안의 부조리와 아픔. 이를 일곱 살 앨리스의 시선으로 바라본 해석으로, 그 해석은 어른들에게도 시사점을 주고 있다.

 





아이와 어른의 실수의 차이

  

앨리스는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열쇠 구멍을 통해 보이는 멋진 세상으로 입장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키가 작아, 열쇠로 문을 열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아이가 어른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신체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한계를 의미하고 있다. 앨리스는 키가 커지는 약과 작아지는 약을 마시기를 반복하며 구멍 넘어 보이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반복되는 실수로 답답해진 앨리스는 거대해진 몸 상태에서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어느새 바닥은 홍수 같은 눈물로 앨리스의 발목을 적신다. 다시 약을 먹고 작아진 앨리스는 그 울음바다에 풍덩 빠지는 신세가 된다. 이는 아이의 눈물은 실수가 되지 않지만, 어른의 눈물은 스스로를 깊은 에 빠지게 하는 '큰 실수'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어른의 실수, 그 실수의 반복은 곧 실패를 의미한다.




모든 모험은 첫걸음이 필요로 하지.


자신의 모습을 열쇠 구멍 사이에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맞추는 서투름의 과정을 통해서, 앨리스는 실수를 줄여나가는 방법,  예정 없이 맞닥뜨리는 상황을 침착하게 맞이하고 대비하는 마음을 배우게 된다. 배움을 통해서 실수를 줄여나감으로 어린아이의 서투름은 극복된다.








키가 커지고 작아짐의 의미



한편, '몸이 작아졌다 커지는 것'은 '이상한 나라(원더랜드)'에서 앨리스가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행위였다. '신체적인 성숙'은 언제나  '정신적인 성숙'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한편으로 우리는 '신체적인 성숙'과 함께 '순수함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을 갖기도 한다.



몸을 크게 키워, '열쇠로 문을 열고' 입장하려 했던 앨리스의 계획과는 달리, 앨리스는 문을 열지 못하고, 몸이 매우 작아진 상태에서 문의 '열쇠 구멍'으로 환상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이는 앨리스가 '순수'를 간직한 채, 어른의 세계에 입장하게 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열쇠'와 '열쇠 구멍'이라는 것은, 어른의 세계에 들어서기 위한 통과 의례와 같은 것인데, 순수성의 상실, 혹은 지혜, 성숙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순수는 성숙, 지혜와 반대되는 말일까?


어쨌든, 어린이로 들어서게 된 어른의 세계. 그것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내포하고 있는 포괄적인 주제라고 생각했다. 어린이의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떠할까? 어린이가 가진 순수함과 배움에 대한 태도, 용기는 어떠한 가치로 드러나게 될까? 그리고 우리 스스로는 '순수'와 '성숙' 또는 '지혜'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어른의 세계, 현실을 대하는 우리 '스스로의 태도'와 스스로가 '추구하는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이러한 가치들의 경중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가?



이러한 갈등과 훈련, 경험에 따른 성숙으로의 '가치 정립'이 가능해진다.

 몸이 커지고 작아짐을 반복하면서 각각의 상황과 필요에 맞게 조절해가는 것으로 마침내 몸과 정신은 올바르게(at right time, with right place and reason) 쓰인다.

 성숙의 도달. 이를 위해 가치의 경중을 따지고 정립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소설이다.




아이유 '스물셋' 뮤비


아이유의 스물셋 뮤비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하였다. 그녀의 노래와 뮤비는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와 성숙의 '가치판단'을 담아냈을까? 아이유 뮤비는 아이유가 앨리스로, 그리고 그녀가 맞닥뜨리는 이상한 나라의 모습이 담겨 있으므로, 스물셋 아이유의 삶에 대한 가치판단적 요소들이 숨겨져 있는지도 찾아볼 수 있다.



스물셋, 그녀는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어린 나이인지, 적당한 나이인지, 많은 나이인지. 그 기준이 되는 것 또한 무엇인지 스스로 정립해 내지 못하고 있다. 방황하는 그녀는 시계토끼를 따라 환상의 세계로 접어든다.



뮤비는 매력적으로 보이고 있으나, 심도 있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가지는 사회 비판적 태도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 순수성과 유연성의 강조 등을 반영하고 있지는 못하다. '앨리스', '꿈 속', '무엇이라도 가능할 것 같은 신비하고 이상한 곳', '방황하는 그녀에게 어디로든 가라고 말하는 체셔 고양이' 등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상징들을 가져와서 뮤비를 다채롭게 꾸며주고 있지만, 아이유의 내면의 성장, 또는 이를 통한 극복과 메시지를 깊게 담아내지는 않고 있다.



스물셋의 그녀는 케이크를 맛보고는 깊은 잠에 빠져 시계토끼를 따라 환상의 세계로 건너간다. 그녀는 그 세계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무얼 정말 원하는지를 찾아보려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을 '색안경'이라고 선 긋는다. 그녀의 가사는 의외로 '방어적'이다. 동시에 꽤 '자극적'이다. 직접적이면서 추상적이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그러나 '사랑과 돈', '자유와 일', '좋음과 싫음', '선택과 포기', '우유와 물'. 이런 것들은 어찌 보면 함께이지, 비교되는 개념이나 대조되는 개념은 아니다. 가치판단이란 이분법적인 것이 아니라, 가치의 경중을 따져보며 시시 때때에 맞는 유연함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가사를 대중적으로 잘 쓰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가사를 쓰기는 하지만, 가사에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는 사람은 아니다. 전자는 타고난 감성과 재능, 노력과 열정이 있지만,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깊지는 않다. 후자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무엇이 옳은지를 찾아가며 사회에 보탬이 되려 노력한다.

생각해 보면 엄청난 차이, 깊이가 다르다. 



솔직하고 당당한 가사로 발매 당시 많은 논란을 낳은 것으로 아는데, 스물셋 그녀의 진정성을 담았다기보다는 어쩌면 바람(wish)을 담은 곡이라고 느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이런 태연함과 여유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바람. 그녀가 메시지를 담았다기보다는 어찌 보면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담은 그런 곡이다.


노래에서 그녀는,
자신은 속마음을 들키지 않은 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인다.
자신은 여우도 아니고 곰도 아닌데, 사람들이 색안경을 쓰고 자신을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신이 마음대로 행동해도 사랑받을 수 있다고 자부한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녀도 그 사람들을 믿지 않으므로 괜찮다고 말한다.



"나도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건지,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데 꼭 선택해야 하나?" 그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는 의미로도 보인다.

다만,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며, 자신은 그들이 말하는 어떤 모습이라기보다는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감도 있으며 그래서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소통을 하는 사람인 것 같다.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돼라.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이 보는 나와 나 자신이 다르지 않다고 상상하라".

'남이 보는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 되도록 살아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멋지게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린이의 순수성으로 입장하는 어른들의 세계


과거는 바꿀 순 없지만,
교훈은 얻을 수 있지.



앨리스는 결국 몸이 아주 작아진 채, 자신이 쏟아 낸 눈물바다를 타고 열쇠 구멍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입장하게 되는데, 이때 앨리스는 쥐와, 벌레, 하찮은 동물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열쇠 구멍을 통과하게 된다. 이상한 나라에는 다양한 '동물'들과 '짐승'들이 나오는데, 이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찮은 동물을 대하면서도 차별 없는 어린이의 '순수성'을, 한편으로는 '동물'과 '짐승'으로 표현되는 '어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앨리스는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이상한 나라를 계속해서 모험하게 된다. 앨리스가 모험 도중 만나게 된 '3월의 토끼'와 '모자장수', 그리고 '겨울잠 쥐'는 당시 사회의 병약한 어른들의 모습이다. 발정 난 토끼, 수은중독에 걸린 모자장수, 잠에 취해있는 겨울잠 쥐는 그들끼리 모여 다과회를 하며, 알 수 없는 수수께끼를 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기서 나가는 길 좀 가르쳐 줄래?"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에 달렸지"
"어디든 상관이 없는데.."
"그럼 아무 데나 가면 되지"
"어디든 도착하기만 한다면.."
"그럼 넌 분명히 도착하게 되어 있어. 오래 걷다 보면 말이야".


앨리스의 모험 도중에 앨리스가 길을 헤매거나 어려움에 맞닥뜨릴 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체셔 고양이는 앨리스의 내면의 '용기'를 의미한다. 체셔 고양이는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다른 장소에 나타나는 일종의 순간이동을 할 수 있으며, 몸 전체가 왔다 갔다 하는 것뿐 아니라 한 장소에 몸의 일부만 나타나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앨리스의 성숙으로의 '가능성'과 '희망'을 의미하기도 하는 체셔 고양이는 때로는 엘리스의 길을 인도하고, 앨리스의 선택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트 여왕과 트럼프로 보여주는 권력층의 모습은 '카드게임'같은 어른들의 세상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가장 강력한 패(권력)를 가진 사람들과, 패를 가진 사람들 간의 합으로 더 거대한 권력을 만들어 내는 일에 몰두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패를 감추고, 또는 확실하게 드러내며 때때로의 야비함과 공포감을 주는 모습이다. 그들은 고작 여왕의 '타르트를 누가 먹었느냐'에 대한 재판에 열을 낸다. 그 누구도 여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문제 해결의 능력은 없고,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절대권력과 종이 있는 모습이다.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독재자, 하트 여왕의 '타르트를 누가 훔쳐 먹었는지'에 대한 재판에서 증인으로 서게 된다. 앨리스는 증언 도중에 '버섯'을 먹고 몸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에 하트 여왕은 물론,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겁을 먹고 앨리스에게 다 같이 덤벼드나, 앨리스는 몸이 이미 압도적으로 커져 있는 상태이다. 이는 더 강한 것(power)에 불종하고 편승하는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무조건적인 수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한다. 


엘리스는 그 순간 잠이 깨며, 자신이 친언니의 무릎에 대고 잠이 들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눈을 뜨고,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빛나는 언니의 얼굴이 보인다.



내 기분은 내가 정해.
오늘 나는 행복으로 할래.  



꿈속에서 맛본 어른들의 세계, '순수함'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성숙'이란 정말 어떤 것일까? 순수와 반대되는 개념일까?

순수함을 간직할 수 있는 지혜와 연단, 그것이 '성숙'이 아닐까?

몸만큼 정신도 성숙하다는 것의 진짜 의미는 어쩌면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순수함과 유연함.

그러한 힘으로 무장하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구스타프 클림트의 일생을 담은 소설 「클림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