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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서 Apr 20. 2023

취향마저 작품이 되는 공간 - 파리 59 RIVOLI

파리 현대 예술가들의 아뜰리에 59 리볼리(59 Rivoli)


파리의 수많은 박물관과 전시들 속, 남다른 경험으로 예술에 흠뻑 취해버리게 만드는 곳이 있습니다. 파리 현대 예술가들의 아뜰리에이자 전시 공간인 59 RIVOLI 입니다.


59 리볼리의 역사는 한 은행이 파산 후 14년간 방치되어 있던 빈 건물에 1999년 예술가들이 무단점거를 하면서 시작됩니다. 파리시는 그들에게 철거 명령을 내렸지만, 다른 화가들도 함께 이곳에 집결하면서 30여 명의 아뜰리에로 둔갑하게 됐습니다. 화가들의 작업물을 직접 볼 수 있는 오픈된 아뜰리에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 관람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엔 2009년 파리시가 이 건물을 매입하면서, 공식적으로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전시 공간의 역사마저 프랑스다운 59 리볼리는 건물 외벽과 입구부터 범상치 않은 예술가들의 포스를 내뿜습니다. 역사를 알고 나니, 파리의 고풍스러운 건물에 층마다 예술가들이 보란 듯이 점거해 버린 듯한 느낌도 듭니다.



현재는 총 39명의 예술가들이 5개의 층에 나뉘어 아뜰리에 공간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술가 자신을 나타내는 사진들마저 아티스트명 부분을 제외하곤 제각기의 개성을 담고 있습니다.



입장료는 아티스트들에게 기부를 하는 개념으로, 관람객들의 자유에 맡깁니다.



예술가들의 아뜰리에 공간은 특정 기획자에 의해 정형화된 틀 안에서 꾸며진 것이 아니라, 입주한 39명의 예술가들이 각자 취향대로 자신만의 영역을 꾸미고 작품활동을 하는 공간입니다. 제가 그동안 가봤던 어느 전시 공간보다 자유롭고 영감으로 가득차 있는 곳이었스비다.

자리를 비운 예술가의 아뜰리에 공간도 그 자체로 전시가 됩니다.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빈 의자와 작품에 쓰이는 도구들을 들여다보며 왠지 남의 작업실을 훔쳐보는 듯한 묘한 기분도 듭니다.




자리를 비운 예술가들도 있었지만, 방문했을 당시 실시간으로 작품을 그리고 있는 예술가들도 있었습니다. 보통 어떤 작품을 보면, ‘이런 걸 그린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사람일까?’ 궁금할 때가 있는데, 이런 궁금증이 생길 겨를도 없이 곳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본인의 작품에 오롯이 몰두하고 있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관람객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며 자신의 작품을 설명해 주는 이도 있고, 원하는 이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이 웅장해졌던 순간은 식물들에 둘러싸여 동물을 그리던 예술가의 공간이었습니다.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그림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음악을 함께 들으며 작품이 만들어지는 순간에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관람객들을 모으기 위해 작위적으로 꾸며진 공간이 아니라, 진짜 예술가들이 생활하고 있는 아뜰리에임을 알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귀여운 미니 주방입니다. 모카포트로 커피를 만들어 마시고 있기도 해서 어느 공간에선 커피 향이 퍼지기도 하고, 카세트테이프나 LP가 잔뜩 쌓인 공간에선 이런 음악 취향이구나 엿볼 수 있어 '취향마저 작품이 되는 공간'입니다.


작품만 전시되어 있고, 라이브로 그리는 모습들만 보여주는 공간이었다면 다른 전시공간과 크게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저 예술가들이 상주해서 작품활동을 하기도 하는 전시공간에 불과했겠죠. 하지만 59 리볼리에서는 예술가들의 실제로 생활하는 모습들까지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 전시의 새로운 형태를 제안합니다. (아예 주방 공간이나 휴식 공간을 분리해서 숨길 수도 있었겠지만, 화장실을 제외하곤 어떤 공간도 숨겨져있지 않고 오픈되어 있습니다.)




59 리볼리의 또 다른 특징은 버리는 공간 없이 예술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계단, 창문, 난간, 천장의 굴곡면까지 어느 곳 하나 심심하게 두지 않습니다. 3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니 영감이 흐르다 못해 센강까지 철철 범람할 기세입니다.




59 리볼리의 예술가들은 퍼스널브랜딩의 대가들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올 수 있는 QR코드는 물론이고, 한 작가는 '나 혹은 내 작품을 찍고 날 태그하지 않고 올리면 넌 asshole이다.'라는 위트 있는 문구를 자신의 계정 안내와 함께 붙여놨습니다. (ㅋㅋ)



한 미술 대가의 과거 아뜰리에를 관람하게 되는 경우들은 종종 있지만, 이토록 많은 현대 예술가들의 아뜰리에들이 모여있는 공간에 들어가 본다는 건 정말 하기 어려운 경험입니다. 이날 본 예술가들 중 피카소처럼 역사에 남게 될 사람도 나오지 않을까 상상하며 파리를 방문하게 되는 분들에게 모두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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