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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Feb 05. 2024

내가 왜 글을 쓸까요?  

일주일 동안 생각해 보았습니다.


며칠 전 뒷마당에 큰 나뭇가지들이 부러졌다. 그중에 한 개는 덜컥 전깃줄에 매달려 버렸고, 또 다른 몇 개는 반쯤 부러져서 계속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호우주의보가 내린 것이 생각났다. 남편이 출장 중이라 하루하루 살기도 바빠서 오늘의 일기예보를 챙겨볼 여유가 없었음을 후회했다. 미리 태풍에 대비했어야 했는데.


강한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뭇가지를 보고 있자니 이러다가 또 우리 집도 정전이라도 될까 봐 걱정이었다. 나는 집 관리인에게 빨리 사람을 불러달라고 연락한 뒤에 초조한 마음으로 뒷마당을 수시로 살폈다. 뜨거운 캘리포니아 햇빛을 받고 무럭무럭 우후죽순 자라난 나무 가지들이 위협적으로 휘청거렸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뒷마당이 있다는 것이 신나는 일이었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뒷마당 있는 주택에 사는 것이 참 귀찮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원에는 수시로 잔디가 자라고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와 낙엽 청소, 가지치기 등 할 일이 수시로 생긴다. 이럴 바에야 정원에 나무를 싹 다 밀어버리고 아스팔트를 깔아버리는 게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우리 옆집은 뒷마당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문제만 일으키는 귀찮은 나뭇가지들이 흔들거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요즘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생각 잔가지들이 떠올랐다. 내가 왜 글을 쓰는 걸까,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 걸까. 깨끗하게 다 밀어버린 뒷마당처럼 이런 자질구레한 고민은 모두 버려버리고 살아도 될 것 같은데 나는 왜 아등바등하고 있는 것일까. 일주일에 한편은 글을 쓰겠다, 매일 영어 공부를 하겠다와 같은 목표를 세워놓고 그걸 해내기 위해 시간을 쪼개고 달성하고, 실패하면 또 자책한다. 가만히 흘러가게 놔두면 되는데 나는 왜 이러는 것일까?


심한 바람에 춤추듯 휘청거리는 뒷마당 나뭇가지들을 보면서 또 동시에 그것을 다 베어버린 휑한 뒷마당을 상상했다. 그러면서 내가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스스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평소에 주방 식탁에 앉아서 뒷마당의 푸르름을 지켜보는 시간을 즐겨한다. 저절로 자라난 작은 풀들, 비파나무, 올리브 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큰 나무도 사랑한다. 비 올 때 위험하고 관리하기 귀찮다고 해서 그 나무들을 다 베어버리면 나는 그 소중한 기쁨을 다 잃게 된다. 나는 그런 황폐한 곳에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인생의 허무함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글을 쓴다. 허무하지 않기 위해 삶의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지만 그것을 달성하고 나면 끝났다는 허무함, 실패하면 그 좌절에 허무함을 느낀다. 결국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들을 즐기지 않으면 인생의 허무함을 견딜 수가 없다. 글을 쓰면 삶의 과정들이 기록된다. 손에 잡히는 글이 된 나의 하루하루에 대한 기록은 그나마 나를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든다.


특히 나는 작년에 미국으로 이주해오면서 큰 삶의 변화를 겪었다. 계획에 없던 둘째를 키우는 삶, 해외에서 사는 삶은 사실 내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변화였다. 나는 자주 심각해졌다. 내가 어떤 삶의 계획을 미리 세우더라도 인생은 안정적일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국에서의 시간을 허무하게만 보내고 싶지는 않다는 내 마음속 작은 불씨를 발견했다. 자꾸 글로 기록함으로써 이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고 싶은 것이다.


이것을 이뤄내기 위한 방법이 꼭 글쓰기이어야 할까? 내 하루를 의미 있기 기록하기 위해 영상이나 사진을 찍을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장 나 자신을 편안하게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이 글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글은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다듬는 뒷 과정도 필요하다. 글쓰기는 내 삶의 속도와 가장 비슷하다. 그래서 글을 읽을 때, 쓸 때 나는 가장 나 다운 사람이 된다.


나는 종종 죽음을 생각한다. 그것은 그냥 죽고 싶다는 허무한 생각이 아니다. 내가 당장 지금 죽는다고 해도 후회 없이 살다가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내가 하루하루를 가치 있게 보내고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면 나는 내 인생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면 죽음을 떠올렸을 때 과거에 대한 후회만 하게 될 것 같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나무가 통째로 쓰러지지 않도록 우리는 가지치기를 한다. 그러면 태풍이 오더라도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매일 글을 씀으로써 내 마음의 가지치기를 한다. 그렇게 정원을 말끔하게 가꾸고 있으면 또 어떤 삶의 변화가 나에게 닥쳐온다고 해도 나는 안전할 수 있다. 가지치기된 생각들은 곱게 접혀 서랍 속으로 들어가고, 가끔 그것을 꺼내보며 아름다운 추억에 잠길 수 있다.


나는 뒷마당에 가지 치긴 한 가장 큰 나뭇가지에서 제일 꼭대기에 있는 것 하나를 꺾었다. 그리고 우리 집 식탁 한가운데에 꽂아두었다. 뒷마당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때 나뭇가지는 우리 일상을 파괴할 수 도 있는 위험한 존재였지만, 가지치기해서 집 안에 꽂아두고 보니 예쁜 장식품이 되었다. 나는 그걸 보며 내가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 내가 의미 있게 하루를 보내고 싶어 하는 의지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내가 앞으로 쓰는 글들이 그런 예쁜 장식품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지치기된 예쁜 장식품 :)




끝으로 미래의 어둠 속에 있을지도 모를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부쳐본다.

 

하연에게. 오늘 너는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 같고, 왜 살아가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겠고 말이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오히려 너무 살고 싶다는 너의 욕망의 또 다른 그림자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는 길을 찾고 있는 사람이야.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야. 글을 쓰는 사람이야. 삶을 허투루 살고 싶지 않아서 발악을 하고 있는 사람이야. 주어진 대로 대충 살고 싶지 않아서 그런 어두운 생각이 드는 걸 거야. 죽음이 바로 너의 뒤통수에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싹 땅에 붙인 너의 발, 멀리 앞을 응시하고 있는 너의 시선을 칭찬해. 그렇게 저벅저벅 걸어가며 너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어. 죽지 마! 가 아니라 당장 죽어도 후회 없도록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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