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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Apr 23. 2024

미국 학교의 탈랜트쇼, 7세 아들 응원기   

왜 다들 그럴 때 있지 않나. 기분 좋지 않은 작은 일들이 쌓여오다가 기운이 확 쳐지는 그런 날 말이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잔잔하던 마음에 회오리가 일어난 날에는 무엇을 해도 집중하기가 어렵다. 어제는 아들 학교에서 열리는 탈랜트쇼의 리허설이 있던 날이었다. 한 번의 오디션, 두 번의 리허설 후에 이 쇼에 서게 되는데 한 번이라도 빠지만 쇼에 오를 수가 없어서 빠지면 안 되는 날이었다. 그런데 하필 기운이 쳐져있던 날 나는 이 일정을 까먹은 것이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2년에 한 번 전교생을 대상으로 피아노, 노래, 무술, 마술 등 자신이 가진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쇼가 열린다. 아들은 요즘 디즈니 영화와 노래에 빠져 있어서 이 쇼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노래 가사를 곧잘 외우던 아들은 미국에 와서도 노래를 몇 번 들으면 신기하게도 가사를 다 외워서 불렀다. 박자에 맞지도 않고 음정도 제멋대로이지만 자신만의 감정을 담아 부르는 모습이 엄마가 보기에는 더없이 재능이 있어 보였다.


막상 오디션 장에 갔더니 이렇게 노래를 덜렁 하나 부르는 학생은 우리 아들 밖에 없었다. 1학년 학생은 아들을  포함해서 둘 밖에 없기도 했다. 쇼에 참여하려고 온 학생들은 몇 년 동안 배워온 악기, 무대까지 따로 만들어 온 마술, 여러 명이 함께 부르는 합창 등 누가 봐도 정성이 많이 들어간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디션 장에는 아들 혼자 선생님과 들어갔다. 닫힌 문 밖에서 나는 아들을 기다리며 잘하고 있을지 걱정이었다. 발개진 얼굴로 오디션 장에서 나온 아들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이 묻어있었다. 선생님은 아들이 노래를 다 잘 하긴 하는데 반주에 맞춰서 노래하는 것을 연습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동안 내키는 대로 노래를 불러온 아들은 반주를 무시하고 노래를 불렀나 보다.


Listening practice. 나는 노래 연습을 이렇게 인지했다. 천방지축 아들은 제 멋에 취해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반주와 함께 하모니를 맞추는 연습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 말을 차분히 듣는 것보다는 자기 말만 하려고 하는 평소의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 라도 이 연습은 정말 필수적이다. 처음부터 잘 될 리가 없었다. 마음대로 할 때는 시키지 않아도 계속 노래를 부르더니 박자에 맞춰 부르자고 하니 이제는 하기 싫어서 난리였다. 그렇게 연습을 하내 마네 하면서 리허설 날짜가 다가온 것이다.


리허설에 왜 안 오냐고 학교에서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순간 그냥 이 쇼를 포기할까 생각했다. 이미 옷을 다 갈아입었고, 둘째는 간식 먹으면서 주방을 정말 어지럽히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어차피 아들이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섰다.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들 잘 못할 것 같아. 안 갈래" 그런데 막상 내 마음이 글자로 표현되자 아차 싶었다. 아니, 아들이 아직 다 해보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먼저 포기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 엄마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누가 아들을 믿어줄까.


나는 그 길로 마들렌으로 범벅이 된 딸을 둘러업고, 어리둥절한 아들의 손의 잡은 채 차에 시동을 걸었다. 리허설은 이미 한창 진행 중이었다. 늦어서 너무 미안하고 인사를 하고 리허설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괜찮다 했다. 다만 리허설 동안 부모들은 다 나가 있으라 했다. 딸과 함께 그곳을 빠져나오는데 어떤 중국인 엄마가 그 강당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강당  안에서는 그 엄마의 아들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아마 아들이 잘하고 있는 건지 걱정이 되었을 것이었다.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됐다. 나도 사실 아들이 리허설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하지만 과감히 뒤돌아섰다. 아들은 내가 지켜보지 않아도 스스로 잘 해내리라. 나는 아들을 믿어야 한다.


리허설이 끝나고 나온 아들의 얼굴은 웃음이 한가득이었다. 본인 말에 따르면 자기가 너무 잘했단다. 그거면 됐다. 아들을 기다리면서 사온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이 달았다. 초초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아들을 지켜보고 있는 대신에 내가 선택한 건 나를 위해 카페에 가는 것이었다. 비싸서 커피는 집에서만 되도록 마시지만 오늘은 한 잔 사주고 싶었다. 커피 안의 작은 얼음 조각들이 바삭거렸다. 그걸 빨대로 휘휘 저으면서 헝클어져 있던 내 마음도 떠올렸다. 내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해서, 내가 보기에 못할 것 같다고 해서 아들을 먼저 포기하지 말자 싶었다. 휘젓는 빨대처럼 의지를 가지고 아들을 믿어줘야겠다. 그러면 살살 녹아가는 얼음들처럼 내 마음도, 아들의 성장기도 다 부드럽게 녹아내릴 것이다.


얼음아, 녹아내려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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