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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May 03. 2024

1. 단식을 시작한 마음

대단한 마음이 있지는 않았다. 사실 다이어트는 주기적으로 결심했다. 샤워를 할 때마다 결심했고, 일요일 밤이면 내일부터 하자라고 했다. 그러다가도 다음 날이면 제대로 먹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배가 불렀다. 심한 고도비만이 많은 미국사람들을 보며 나는 그에 비해 날씬하다고 위로했다. 결심과 위로 사이를 오가면서 내 결심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비슷한 주말 저녁이었다. 평일에는 밥을 잘 챙겨 먹을 시간이 없어서 주말에 몰아서 삼시 세 끼를 잘 먹었다. 빵빵해진 배 가운데 팽팽해져 있는 배꼽을 바라보았다. 아이를 가지기 전에는 작고 앙증맞은 배꼽이었는데 임신하면서 배꼽은 최대치로 늘어났다가 이제는 영영 처음의 모습을 잃었다. 나는 내 배꼽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늘어난 배꼽 윗부분이 볼록 튀어나와서 원래는 없었던 주름이 져 있었다. 나는 영영 이대로 이 변해버린 배꼽과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나는 문득 내일은 내 배꼽을 위해 하루종일 굶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24시간을 굶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을 것을 시도해 보려는 것은 사실 너무 심심해서 이다. 나는 미국에 와서 아이를 키우며 정말 별 거 없이 살고 있다. 회사를 다니다가 휴직하고 나니 머리의 90%가 빈 공간으로 남겨져 있는 기분이다.


다만, 내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꼬물대고는 있다. 말라죽지 않기 위해 땅 속에서 습기를 찾아 버둥거리는 지렁이처럼 나는 죽을힘을 다해 움직이고 있다. 안타깝게도 시력이 없는 지렁이처럼 나는 앞이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계속 심심한 마음이 든다. 그 목적성 없는 권태로움 삶을 견디기 위해 나는 뭐든 하고는 있다.


아침에는 찬물과 뜨거운 물을 섞어 한 잔을 마시고, 안 되는 영어를 중얼거려도 본다. 자기 전에는 샤워를 하고 가려운 왼쪽다리에 로션을 특별히 더 발라준다. 단식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새로운 일을 하며 그 시간을 붙잡고 싶었다. 평범하게 흘러갔을 1시간이 단식을 하는 동안에는 배고픔을 참아내는 1시간이 될 것이다. 단 하루라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나는 내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굶기'를 해보기로 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몰랐다. 나의 이런 가벼운 결심이 오히려 7일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곤 말이다. 그걸 다시 기록해 보면서 반짝였던 일주일을 다시 상기해 보고 싶다.


어린 시절, 비가 한창 오고 난 후 쨍쨍한 햇빛 아래 마른땅을 찾아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본 적이 있다. 갑자기 비가 오면 땅 속에 있던 지렁이는 파도같이 밀려드는 물살에 휩쓸려 가기 얼마나 쉬운가. 매일의 일상도 가벼운 지렁이가 빗물에 흘러가듯 떠내려 가듯 쉽게 떠내려 간다. 그 지렁이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번쩍 들어 다시 땅 속으로 돌려보내주었던 어린 소녀의 마음으로 나는 내 일상의 구세주를 만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갑작스러운 파도에 휩쓸려 가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땅 속에서도 어둠에 잡아먹히지 않고 밝은 곳을 내다보기 위한 마음, 나는 그것을 찾기 위해 단식을 시작했다.



내가 구해줄게. 가자! 흙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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