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고 있다는 착각>을 읽고
미국에서 3년 거주 후 한국에 돌아와서 학원 상담을 참 많이도 다녔다. 학원 상담실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작아진다. 아이는 옆에서 꼴깍 숨죽여 물을 마시고 있고, 선생님은 테스트 결과지를 넘기며 조용히 설명한다. “전반적으로는 괜찮아요. 다만 이런 부분을 채워주시면 더 좋아질 것 같아요.” 그 말은 부드럽고 친절하다. 공격적이지도 않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머릿속에 남는 건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채워야 할 부분’이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부족한 것부터 세는 사람이 되었을까. 아이가 잘하는 건 잠깐 스쳐 지나가고, 보완해야 할 영역은 오래 남는다. 상담실의 공기는 늘 비슷하다. 가능성보다는 공백이 먼저 설명되고, 강점보다는 약점이 계획표의 중심이 된다. 그 구조 안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부모는 어느새 ‘더 준비해야 할 사람’이 된다. 지금 이대로는 어딘가 모자란 것 같고, 뭔가를 더 해주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미국에 살 때 경험했던 상담은 조금 달랐다. 선생님은 먼저 아이가 교실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이야기해주었다. “He’s very curious.” “She asks thoughtful questions.” 구체적인 장면이 따라왔다. 수업 시간에 친구의 말을 기다려주는 모습, 발표할 때 자신 있게 눈을 맞추는 순간, 못하지만 축구 경기에서 끝까지 뛰어다니던 태도. 물론 개선해야 할 점도 말했다. 하지만 강점이 먼저였고, 보완점은 그 강점을 더 잘 쓰기 위한 조언처럼 들렸다. 그래서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웠다. 아이를 고쳐야 할 존재로 보기보다, 이미 자라고 있는 존재로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나는 한 책의 제목을 보고 그 상담실을 떠올렸다. <Outsmart Your Brain> 원제를 직역하면 ‘뇌를 능가하라’에 가깝다. 우리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그 원리를 활용해 더 잘 배워보자는 제안처럼 들린다. 꽤 능동적이고, 어딘가 격려하는 느낌도 있다. 그런데 한국어판 제목은 <공부하고 있다는 착각> 이다. ‘착각’이라는 단어는 묘하게 날카롭다. 혹시 너, 지금 잘못 공부하고 있는 건 아니야? 혹시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헛수고인 건 아닐까? 제목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큰 도움을 받았다. 한국어 교원을 준비하고, 영어 초보자들을 가르칠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의 내용은 생각보다 실질적이었다. 다시 읽는 것만으로는 ‘안다’고 할 수 없다는 점, 진짜 학습은 기억에서 꺼내보는 '인출 연습'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설명은 나의 공부 방식을 바꾸었다. 수업을 설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개요를 분명히 제시하고, 지금 어디를 배우고 있는지 반복해 확인해주며, 학생이 스스로 말해보도록 돕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배웠다. 시험 전에 답안을 점검하는 작은 루틴, 시험 불안이 기억을 흐릴 수 있다는 이해, 때로는 100이 아니라 115까지 연습해야 오래 남는다는 과잉 학습의 원리까지, 그것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도구였다. 나는 더 이상 ‘설명을 잘하면 이해하겠지’라고 믿지 않게 되었고, 대신 ‘학생이 꺼내 말해볼 수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유익함과는 별개로, 제목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왜 우리는 ‘더 잘 배우는 법’ 대신 ‘지금 잘못 배우고 있는가’를 먼저 묻는 방식에 익숙할까. 왜 격려의 언어보다 경고의 언어가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질까. 아마도 우리는 오래도록 경쟁적인 구조 안에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빠르게 결과를 내야 하고, 뒤처지면 안 되고, 점수는 곧 능력을 증명하는 숫자가 된다. 그런 환경에서 “지금 방식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는 강력한 자극이 된다. 불안은 잘 팔리고, 결핍은 동기가 된다.
그래서 나는 자꾸 원제에 머문다. Outsmart Your Brain. 이 말에는 이상하게도 약간의 장난기와 여유가 있다. 나를 몰아붙이기보다 “우리 한번 뇌를 잘 써보자” 하고 손을 내미는 느낌이다. 뇌는 적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파트너이고, 공부는 나를 의심하는 과정이 아니라 전략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착각’이라는 단어가 잘못을 들춰내는 방향이라면, ‘Outsmart’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방향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그 제목을 읽을 때마다, 공부가 실패를 점검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가능성을 설계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가끔 궁금해진다. 우리가 이렇게 익숙하게 결핍에서 출발하다 보면, 아이는 무엇을 배우게 될까. 공부의 기술일까, 아니면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감각일까. 학원 상담실에서 반복해 들었던 “이런 부분을 채워주시면 좋겠다”는 말과 “공부하고 있다는 착각”이라는 제목은 어쩐지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듯하다. 지금 너는 충분하지 않다고, 더 점검하고 더 채워야 한다고.
나는 여전히 이 책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도움을 받았다. 다만 언젠가는 이런 제목도 가능했으면 좋겠다. ‘더 잘 배우는 법’, 혹은 ‘기억이 오래 남는 공부’. 착각을 걱정하기 전에, 배움 자체를 믿어보는 언어 말이다. 아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보다, 무엇을 이미 해내고 있는지 먼저 묻는 문화. 부족함을 증명하는 대신 가능성을 설계하는 교육. 어쩌면 우리가 벗어나야 할 착각은, 우리가 항상 모자라다는 그 믿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