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제법 큰 도로를 탔다. 고속도로는 아니었지만 4차선 이상의 자동차 전용도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앉은 좌석 시야로 2시 방향에서 유난히 작은 트럭을 발견했다.
0.5톤 사이즈의 미니 트럭이었다.
그런데 차량 뒤쪽에 작은 글씨가 붙어 있었다.
‘혈액 운반 차량’
혈액을 저렇게 작은 차량에 운반한다고? 의아했다. 내 생각에는 냉동 탑차 같은 차에 꽁꽁 싸서 조심스럽게 운반해야 할 것 같은데 예상과 전혀 달랐다. 급하다고 사이렌도 좀 울려야 할 것 같은데 그 어느 차보다 조용히 제 갈 길을 달리고 있었다.
화려하지도 시끄럽지도 않게 묵묵히 본인의 임무를 다하는 저 작은 라보 트럭이 왠지 안쓰러워졌다.
겨우겨우 빨리 달리는 모습을 보니 왠지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엔진의 힘이 달려 주변 차들보다 느리게 달리는 모습에서는 ‘조금만 더 힘을 내 보지 그래?’라며 없는 엉덩이도 만들어서 ‘궁디팡팡’을 해주고 싶었다.
빨리 달려도, 느리게 달려도 뭔가 안쓰러움을 유발하는 신기한 트럭이었다. 불쌍하다고 하기엔 온전히 불쌍하지 않고, 귀엽다고 하기엔 온전히 귀엽지 않은 저 트럭에 왠지 자꾸 눈이 갔다.
“여보, 저 작은 차가 혈액 운반을 하는 모습이 너무 위태로워 보이지 않아? 난 좀 더 큰 차로 옮겨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혈액이잖아.”
“모든 혈액 운반 차량이 저 트럭은 아닐 거야. 저 트럭은 아마 소량 운반용 같은데?”
남편은 혈액 운반 차량이 생각보다 너무 작다며 안타까워하는 오지랖 넓은 나를 보며 나름대로 생각한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문득 저 혈액 운반 차량이 교사들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혈액 운반 차량은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만 결코 화려하지 않다.
혈액은 곧 생명이다. 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거룩한 일인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소중한 혈액들은 너무나 초라한 차에 올라탔다.
거룩함과 초라함이 만나는 그 지점은 시리도록 슬펐다.
그럼에도 그 차는 묵묵히 자신의 속도를 냈다. 무거운 대형 트럭이 지나가면 살짝 흔들려주기도 하고, 부드러운 곡선형의 세련된 세단이 지나가면 담백한 몸체를 부끄러움 없이 다 보여주기도 했다.
그저 앞으로 갔다.
다시 생각해보면 혈액은 교육이다. 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거룩한 일인가. 그러나 교사들이 지내는 학교에서의 하루는 생각보다 소박하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교실을 지키며 묵묵히 자신의 속도를 낸다. 이상한 사건이나 정치적 이슈들에 얽혀 괜스레 욕을 먹기도 하고, 대기업의 화려한 급여액 앞에서는 얇디얇은 월급봉투를 부끄러움 없이 흔들기도 한다.
누군가가 교사들의 삶은 클 필요도 화려할 필요도 없다고 했나 보다.
그저 저 라보트럭 정도면 딱 좋다고 단정 지어버린 느낌이다.
‘혈액이 가진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좀 더 크고 화려한 엠뷸런스 정도는 지원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 것처럼 ‘교육이 가진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교사들의 삶과 행복도 좀 더 챙겨줄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말은 아무도 해 주지 않는다.
‘교육’이란 짐을 지워주고는 그저 라보 트럭만 타라고 하는 시선은 옳지 않다.
‘교육’이라는 소중한 것이 더 잘 구현되기 위해서는 더 크고 튼튼한 차가 필요하다.
우리는 더 크고 더 튼튼한 차에 더 가치로운 ‘교육’을 담고 싶다. 벤츠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현기차(?) 정도는 꿈꾸고 싶다.
“더 이상은 안돼. 꿈도 꾸지 마. 라보도 감사한 줄 알아.”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에게 배송될 예정이었던 혈액이 너무 작은 차량에 실려서 큰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배송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답변을 받으신다면 어떤 기분이시겠어요?
물론, 라보 트럭이든, 현기차든, 벤츠든 혈액 운반 차량은 혈액만 실어준다면 오늘도 그 혈액을 싣고 묵묵히 달릴 겁니다. 다만 어떤 차에 타느냐에 따라 혈액의 배송 속도, 혈액의 질, 혈액의 오배송률이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것만 명심하세요.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은 라보 트럭에 실려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벤츠를 한 번 타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