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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같은 그녀


우리 학교 도서관에는 예쁘고 친절한 사서 선생님이 계신다.


학기 초부터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사서 선생님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처음엔 서로의 옷차림 칭찬에서 시작했던 인사들이 육아 이야기로, 학교 이야기로 계속 이어졌다.

선생님은 부족했던 나의 육아 경험을 늘 경청해주었다. 그리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그렇게 도움이 될만한 팁은 없었는데) 또, 둘 다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보니 전입교사가 느끼는 이상한 시스템에 대한 대화도 무척 잘 통했다.(주로 ‘저만 느끼는 거 아니죠?’ 이런 식의 공감.)


게다가 선생님은 늘 갈 때마다 뭘 주셨다. 커피, 간식, 다정한 칭찬은 보너스.

“선생님. 책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아. 제가 좀 자주 오죠? 그런데 빌린다고 다 읽는 것은 아니에요.”


“선생님, 지난번에 글쓰기에 관한 책들도 많이 신청하셨더라고요.”


“아, 요즘 글쓰기에 관심이 생겨서요.”


부끄럽지만 글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렸다. 선생님은 이제 모든 의문이 풀린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문득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글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나에게 주는 그 사랑을 대기업(?)에 비유하고자 한다.


첫째, 그녀는 스타벅스다. 벌써 눈치챘겠지만 그녀의 커피는 믹스가 아니다. 무려 캡슐커피다. ‘딸깍’ 소리와 함께 캡슐 머신이 작동하는 그 순간 도서관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나의 행복감을 읽으셨는지 선생님은 매주 나에게 새로운 캡슐 커피를 선사한다. 종이컵이 작다며 항상 종이컵도 두 개씩 겹쳐서 나에게 커피를 선물해주시는 세심함까지 갖고 있다.


둘째, 그녀는 코스트코다. 그녀는 손이 크다. 다양한 독서 행사로 아이들에게 선물을 팍팍 안겨준다.(제한된 예산에서 최고의 결과를 뽑아낸다.) 학급 교육활동을 위한 대량 대출도 팍팍 가능하다. 산더미 같은 책들을 바코드로 딱딱 잘 찍어주신다. 또, 회원제로 운영되는 도서관처럼 나의 책 취향을 정확히 찾아주신다.


셋째, 그녀는 마켓컬리다. 글을 써보니 읽지 않고서는 쓰지 못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그 원리를 알아버렸다. 그녀는 내가 ‘글 똥’을 잘 누게끔 ‘책 밥’을 준다. 언제나 밝은 미소로 대출과 반납을 도와준다. 좋은 책도 추천해주시고 자주 가도 눈치 주지 않는다. 글 똥이 잘 안 나올 때면 글변 활동(?)이 잘 되도록 유산균 같은 역할도 해 주신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늘 엄지 척을 올려주는 그녀를 떠올리면 자빠져 잘 수가 없다.

대기업 같은 그녀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글 밥도 먹여주고, 캡슐커피도 먹어주고, 뭐든 대용량으로 퍼주는 사서 선생님에게 정말 감사하다.


나는 아직 스타트업이지만 사서 선생님의 대기업 기운을 받아 언젠가는 대기업이 되리라 믿는다.

글도 교직생활도.


(참고로 위의 기업은 저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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