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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결의 기술


“선생님, 죄송한데 오늘 2교시 영어전담시간에 0학년 0반 보결 가능하실까요?”


“네. 알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늘 죄인처럼(?) 접근하시는 실무사님께 애써 밝게 대답해드렸다.


날이 쌀쌀해지는 요즘 다시 교내에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세에 있다.


교사가 확진될 경우 보통 기간제나 시간강사가 투입된다. 그러나 관리자 입장에서는 당일 아침에 확진 전화를 받을 경우에 바로 대체 교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럴 경우에는 급하게 전담시간 있는 교사들을 섭외한다. 그들은 갑자기 연락을 받고 그 반으로 들어가서 보결 수업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보결수업이라는 것이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러려니’하고 들어간다.


수업을 못 할 정도의 일을 겪은 그 반 담임교사에 대한 예의와 동료애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살짝 더 오버해 보자면,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기에 서로서로 이해하고 돕는 따뜻한 ‘향약과 두레 정신’이기도 하다.(의미부여, 포장 전문입니다.)


코로나 19로 이후 보결 횟수가 현격하게 늘었다. 그 전에는 일 년에 3-4회 정도 수준이었다면, 팬데믹 이후 보결은 그 배 이상 수준이 되었다.


이에 보결에 덤덤했던 교사들도 그 횟수가 늘어가면서 예민해졌다. 그래서 보결을 배정하고 안내하는 분들은 늘 조심스럽다.(안내하시는 분 잘못도 아닌데 그분한테 짜증 내시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교사의 갑작스러운 확진 소식을 접한 관리자들은 ‘선생님, 얼른 나으세요.’를 읊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재빨리 ‘기간제 리스트’를 떠올린다고 한다. 최대한 기간제나 시간강사를 구해보지만 온 나라가 난리인 통에 대체교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이야기도 있다.

대체 교사를 구하는 것이 요즘 관리자들의 핵심역량이며, 그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관리자들은 죄책감(?)에 휩싸여 스스로 보결을 자처한다고도 들었다.

특히 대부도 이야기는 흥미롭다. ‘대부도’라는 섬(물론 도로가 잘 닦여있어 차로 출퇴근이 가능)이 위치한 학교의 관리자들은 출퇴근 서비스, 관사 제공 서비스, 그리고 주변 맛집이나 카페 방문 서비스까지 혜택으로 걸어서 대체교사를 구한다고 한다.(기간제 선생님. 대부도 한 달 살기 어떠세요?)


이 난리 통 속 다수의 보결 경험 결과 나름 보결의 기술이 좀 생겼다. 나만 알기 아까워서 당신에게만 살짝 알려준다. (은밀한 주식 종목처럼.)


첫째, 보결 연락을 받으면 사서 선생님께 바로 전화한다. 그 시간에 도서관 활용 수업이 가능한 지 알아보면 된다. 물론 당일 연락은 매우 무례하지만 1분 전 보결 안내를 받은 나의 딱한 사정을 말씀드리면 사서 선생님들이 모른 체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보결 수업으로 도서관 활용 수업이 꼭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서관으로 가기 전에 해당반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도서관 사용 수칙을 잘 설명해주면 아이들은 진지하고도 깊게 책과 만난다.


둘째, 도서관 섭외가 실패라면 순순히 교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수업을 한다. 미리 수업 준비를 해 놓으신 경우에는 그 수업을 하고, 아닐 경우에는 당황하지 말고 나름대로 수업을 한다.(우리는 1~6학년 교과서를 모두 알고 있는 전문가가 아닌가!)

이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담임선생님보다 ‘덜’ 잘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담임선생님을 그리워할 수 있도록 세팅(?) 해야 한다. 이번 수업의 목표는 오직 하나! ‘담임선생님의 소중함을 느끼게 할 것.’이다. 나오면서 마지막 멘트는 ‘너희 훌륭하신 담임선생님을 만난 것을 행운으로 알도록 하여라. 돌아오시면 더 잘해드려라. 선생님 안 계실 때 학교 생활 잘하는 것이 진짜 멋진 것이다. 쉽지 않은데 너희들 한 번 해볼래?’이다.


반대로, 만약 내가 보결 유발자(?)였다면 이런 해결책을 제시해보겠다.


첫째, 아무리 바쁘더라도 학년에 한 분과는 긴밀하게 연락을 한다. 아무리 완벽하게 보결 준비를 해놓고 왔다고 하더라도 당일에 문제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들은 주로 학년부장님이나 옆반 선생님께서 잘 처리해주신다. 연락이 안 되면 선생님들은 멘붕이 온다. 잘 도와주고 싶어도 참 어렵다. 그래서 꼭 학년부장님 또는 옆반 선생님과는 반드시 긴밀하게 연락해야 한다.


둘째, 돌아왔을 때 학년부장님이나 동학년 선생님들께 감사를 표현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의 공백을 가장 많이 채워주시는 분은 학년부장님 또는 옆반 선생님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신세(?)를 진 김에 동 학년 간식을 한번 준비하면 어떨까?

실제로 어떤 선생님은 본인의 수업에 들어오신 매 차시의 선생님들을 직접 찾아뵙고 캔커피를 돌리신 적도 있었다. 본인도 많이 아프셨을 텐데 그 미안함을 어찌하지 못하고 한 분 한 분 찾아뵙는 그분의 정성에 정말 감동했다.(그러나 감히 따라 하지는 못했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서로서로 생각해주는 마음만 있다면 어디에나 길은 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 보결의 기술은 널리 널리 퍼지는 게 좋겠다.(앗, 앞에서 비밀이라고 한 말은 취소!)


모든 교사가 기꺼이 보결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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