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쓰기를 응원해주는 미모의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받은 은혜를 주로 아부로 갚는 편.)
내 글에서 몸이 안 좋다는 내용을 보시고 걱정되어 전화 주셨다고 했다.
“선생님. 그동안 너.어.무. 달리셨어요. 이제 천천히 쓰셔도 됩니다요.”
“하하하하하. 정신없이 썼더니 몸이 좀 쉬라고 하네요. 그동안 제가 너무 오버했죠?”
“아니에요. 잘하셨어요. 지난여름 선생님과 사진을 찍을 때, 저는 그 사진이 꼭 쓰일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응?”
지난여름, 부족한 글 몇 편을 들고 미녀 선생님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몇 편을 쓰는 동안 선생님은 나를 기다려주면서 응원하고 또 응원해주었다.
그런 선생님이 고마워서 작은 선물을 드렸다. 그리고 함께했던 그 순간을 남겨놓은 사진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선생님은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며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그 사진을 올려주었다.
또, 나의 인스타와 브런치 주소를 언급해주었다. 덕분에 선생님들의 예쁘고 멋진 작가 친구들의 나의 인스타에 놀러 와 주셨다.(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부 아부.)
“어머, 저는 선생님 일상을 올리는 사진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그저 좋은 만남의 후기 정도?”
“아니에요. 저는 사진을 찍는 순간 이미 이런 상황들을 다 예상하고 있었답니다.”
와. 이 언니 아니 이 동생 무섭다.(저보다 동생입니다.)
그녀의 시선은 현재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늘 선명하다. 그렇다고 현재를 놓치지도 않는다. 정말 멋진 동생이다.
“그래도 글 써보시니까 어때요? 꾸준히 쓰시는 거 멋져요.”
“작가는 신나게 쓰는 날도 힘겹게 쓰는 날도 있다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죠. 그런데 막상 다 겪어보니 완전 다른 세계를 사는 느낌이에요. 이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 본 사람과 롤러코스터를 타 보지 않은 사람의 차이인 것 같아요. 롤러코스터가 무섭기도 재미있기도 한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것을 진짜 타 본 사람들만 아는 그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겪으시는 지금 이 경험들이 모두 의미가 있어요.”
이제는 더 이상 롤러코스터를 타 보지 않고 롤러코스터를 아노라고 떠드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냥 한 번 타보고 싶었다. 어떤 이는 이미 잘 알고 있는데 뭐하러 타냐고, 어떤 이는 위험하지 않냐고도 했다.
그러나 더 늙으면(?) 그 용기마저도 내지 못할 것 같았다. 타고 후회하더라도 그저 한 번 타보고 싶었다.
글이 잘 써지는 날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하늘을 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내리막길에 쫄깃해진 심장을 부여잡는다. ‘아!’ 소리를 지르며 빨리 그 순간이 지나가기를 바란다. 내리막길에서도 두 손을 번쩍 들어 자유낙하를 즐기는 그런 위인은 아직 못 된다.(‘글이 안 써진다 야호!’ 이렇게 외칠 수 있는 날이 나에게도 왔으면.)
어제는 글이 안 써진다고 투덜거렸는데, 선생님과의 통화로 오늘은 그래도 쓸 마음이 조금은 더 생겼다.
용기를 갖고 블로그로 갔다. 그리고 블로그 챌린지를 올렸다. 다 올리고 나니 귀여운 듯 엉터리 같은 캐릭터가 나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한 건 했다! 주간 일기 달성!’
저 멘트 뭐냐.
‘잘했어! 파이팅!’ 이런 멘트들 보다 덜 간지러우면서도 아무한테도 들키고 싶지 않아 꽁꽁 숨겨두었던 나의 인정 욕구를 쓰담쓰담 만져주는 느낌이다.
대단한 칭찬이 아닌 듯하면서도 뻐근한 여운을 준다.
프리랜서들이 잘 쓰는 표현 중에 ‘건 by 건’이라는 표현이 있다.
한 때 ‘건 by 건’을 남몰래 동경했던 시절이 있었다. 매일 수백 ‘건’을 견디고 해내도 월급이 오르지 않는 나 같은 공무원에게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뭔가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프리랜서 친구들은 ‘건 by 건’이 얼마나 힘든 건 줄 아냐고 했다. 별걸 다 부러워한다며 선생님이나 열심히 하라고 혼났었다.(별걸 다 부러워함. 별다부.)
그 동경과 미련을 잘 버무려서 앞으로 내 글쓰기는 ‘건 by 건’으로 가기로 했다. 직업은 공무원이지만 마음만은 프리랜서가 되기로 했다.
음. 가격은 잘 모르겠는데, 잘 쓰건 못쓰건 그냥 매일 한 건만 하련다.
그 마음으로 쓰기로 했다. 너무 심각하지 말자.
건 by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