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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무와 레몬청


퇴근 시간을 앞두고 전화기가 울린다.


A언니다. 주로 카톡으로 연락하는데 전화가 오니 왠지 불안하다.

“언니! 어쩐 일로 전화를? 무슨 일 있어요?”

“영미야, 뭐하냐? 글 쓴다고 또 깔롱 부리고 있냐?”

“하하하. 아뇨. 이제 퇴근하려고 정리하고 있죠.”

“퇴근길에 우리 집 좀 잠깐 들렸다가.”

“왜요?”

“딸랑무 김치 담갔는데 너 생각나더라. 너 딸랑이잖아. 하하하하하.”

“아, 언니. 증말! 알겠어요. 가면서 들릴게요. 감사해요.”

퇴근길에 언니 집에 들러서 딸랑무 김치를 받아왔다. 김치냉장고 한 칸을 점령할 만큼 넉넉히 도 주셨다.


집에 도착하니 또 전화기가 울린다.


이번엔 B언니다. 이상하다. A언니, B언니는 서로 모르는 사인데. 이번엔 또 뭐지?


“영미야 줄 거 있는데 잠깐 나올 수 있어?”

“네? 언니, 뭐요?”

이번엔 또 무슨 선물일까? (이런 것이 바로 김칫국 드링킹.)


듣지도 않았는데 벌써 기분이 좋다.

“레몬청 담갔어. 네가 지난번에 레모네이드 어쩌고 했잖아.”

“레모네이드?”


아. 어느 책에서 본 이야기(인생이 너에게 레몬을 주면 시다고 속상해 말고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버려라. 대략 이런 내용.)를 언니에게 해 준 적이 있다.

“야, 레몬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게 아니라 레몬청을 만들면 더 좋잖아. 오래 두고 먹을 수도 있고!”


“아, 그러네요! 역시 언니는 똑똑해!”


“내가 레몬 깨끗하게 빡빡 닦고, 병도 소독하고 그랬으니까 맛나게 먹어. 참 설탕 아니고 꿀이다. 그거.”


“역시 부자 언니!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레몬청을 들고 들어와서 자랑스럽게 남편에게 보여줬다.(당신은 이런 거 못 받아 봤지? 도발.)


“여보, 이것 좀 봐. 언니들이 오늘 유난히 나를 찾네. 겨울이 오니까 내 걱정이 되었는지 이렇게 하나씩 챙겨

주시네. 진짜 감사하다 그렇지?”


“그러게. 감사하다. 근데 이유가 있는 것 같아.”


“무슨 이유?”


“다들 겨울에 유난히 너를 찾는 이유가 있지.”


“뭔데?”


“그건 네가 호빵이라서 그래. 하하하하하.”


“아이씨.”


얄미운 남편에게 등짝 스매싱은 날려 줬지만 그 말은 인정이다.


동그란 얼굴형에 볼살이 유난히 많은 나는 비슷한 느낌의 별명들을 가지고 있다.


보름달(상현달, 하현달 이런 거 아니고 언제나 FULL-MOON.)

츄파춥스, 숟가락(동그란 얼굴에 마른 몸을 가지고 있던 시절.)

마이크(조금 통통한 몸이 되면 친구들이 숟가락이 마이크 되었다고 했다.)

잠만보(동그란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으면 아들이 나를 이렇게 부른다.)


호빵도 그런 별명 중에 하나였다.


따뜻한 이미지와 넉넉한 이미지 덕분에 싫지 않은 별명이었지만 오늘따라 그 별명이 유난히 맘에 든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호빵이 나오는 계절에 나를 꼭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좌 딸랑무 우 레몬청.


이제 이번 겨울도 문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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