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최고다 글마음


지난 2주간 하얗게 불태웠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쓰고 또 썼다.


낮에는 열심히 글감을 채집하고 저녁에는 컴퓨터에 앉아서 피아노 치는 사람 마냥 자판을 두드렸다.(마음만은 라흐마니노프 느낌으로)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계정을 만들고 쓴 글을 매일 올렸다. 글들이 제법 모아져서 브런치에도 올릴 수 있었다. 좋은 동료들과 친구들의 관심과 댓글이 이어졌다.

브런치에서는 모르는 분들이 나타나 내 글에 라이킷을 붙여주시고 댓글도 남겨주셨다.


오랜만에 받는 관심이라 그런지 내심 기분이 좋았다.(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헤헤.)


글쓰기도 잘되고, 글감 채집도 어렵지 않았다.(글감이 없으면 수업을 열심히 하거나 애들을 더 유심히 관찰했음.) 덕분에 힘든 줄 모르고 행복한 열흘을 보냈다. 약한 몸이 중간중간에 조금씩 신호를 보냈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글쓰기에 마취되어 아픈 줄도 몰랐었다.


그러나 조금씩 피곤한 증상들이 느껴졌다. 어떤 날은 잇몸이 부었다. 또 어떤 날은 눈이 뻐근했다. 조금씩 좋아지다가 나빠지는 것이 반복되었다.


그저 날아갈 것만 같았던 매일 아침이 조금씩 힘들어졌다.


피곤한 월요일 아침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신선한 글감을 찾아 나서던 반짝이던 눈망울은 동태 눈깔이 되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제 눈이라서 괜찮습니다.) 또, 작가로 성공하면 학교를 당장 그만둘 것만 같던 그 ‘파닥파닥’한 열정은 파김치가 되었다.


‘아, 역시 ’ 글쓰기‘ 또한 한 여름밤의 꿈이었던가!’


뭐든 꾸준히 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며 그렇게 씁쓸한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럴 때 주로 나를 위로해주는 것은 푹신한 소파와 핸드폰이다.


노력의 진짜 의미는

한 순간 자신을 불살라

하얗게 불태우는 것이 아니다.

평소 안 하던 숙제를

10분 만에 해치우는 것 같은

그런 멋있는 순간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정말 멋없는

순간을 반복하는 것이다.

(출처 : 인스타그램 글마음(@geulmaum))

절망 중에 인스타 글 하나를 건졌다.


평소 안 하던 숙제를 10분 만에 해치우는 것 같은 열흘을 보냈다.


그러나 노력의 진짜 의미는 그게 아니라고 했다.


정말 푸석하고 지친 육신을 이끌고 자판을 두드리는 이 순간을 반복해야 한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지금 정말 멋없다. 초라하다. 지쳤다.

그럼에도 저 글은 나에게 계속 멋없으라고 했다.


더 멋없는 순간들을 만나라고 한다. 진짜 멋없는 것은 반복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저 글에게 묻고 싶었다.

‘이렇게 계속 멋없다가 갑자기 멋있어질 수 있는 건가요? 그런 마법 같은 일이 제게도 나타날 수 있는 건가요?’


글이 답한다.


‘나는 모르지.’


으, 얄밉다.(남편보다 더.)


다시 천천히 글을 읽어본다.


노력의 진짜 의미는

한 순간 자신을 불살라

하얗게 불태우는 것이 아니다.

평소 안 하던 숙제를

10분 만에 해치우는 것 같은

그런 멋있는 순간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정말 멋없는

순간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번이 글을 쓸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집중하고 싶었고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얗게 불태우지 않아도 된다고, 숙제를 10분 만에 해치우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꽤 다정한 위로다.


파닥파닥 한 열정으로 글감을 채집했던 날보다 더 쉽게 글감을 채집한 것만 같은 머쓱한 생각이 들었다.


소파에 누워서 손가락으로 핸드폰으로 까딱까딱. 오늘 채집은 아주 근사했다.(점점 날로 먹고 싶어 하는 중.)

좌절하지 말고 아무 글이나 좀 쓰라고 글마음님이 쑤어준 전복죽 같은 글을 한 번 더 읽어본다.

글 마음님 감사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반가사유교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