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교사상


전담시간 없이 6교시 수업을 꽉 채워 달렸다. 아이들을 급히 보내고 교실에 앉았다.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아랫배에서 콕콕 신호가 온다.

‘아, 화장실!’

정신없는 시간들 때문에 미루고 미룬 ‘화장실’이 더 이상은 안 된다며 나를 재촉했다.(방광 포화상태)

복도 맨 끝에 위치한 우리 교실과 화장실과의 거리는 약 30미터. 자 출발이다.


냅다 뛰면 교양을 잃게 되고 너무 천천히 걸으면 속옷을 잃게 된다.(다행히 18년 동안 그런 경험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해는 마세요.)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목표물을 향해 전진한다.


긴 복도에서 목표물만 보고 걷는 것도 좀 어색하다. 눈동자를 오른쪽, 왼쪽, 위, 아래로 자연스럽게 돌려본다. 마주치는 선생님께 미소도 좀 나눠드린다.


여러 교실들을 지나치지만 너무 들여다보는 느낌이 나서는 안된다. 앞문 지점에서는 선생님을 훔쳐보고 뒷문 지점에서는 교실 환경판을 훔쳐본다.(역시 자연스러웠어.)

드디어 목표점에 도달했다. 화장실에 앉아 ‘화장실’ 참는 나를 자책한다.

‘애들도 중하지만 너를 좀 챙겨라. 방광염이라도 걸리면 어쩔 것이냐. 이제 나이도 있는데 화장실은 좀 잘 챙겨보자. 뭣이 중한디!’


나한테 혼나는 시간은 짧고 굵었다.

손을 씻고 물기를 탈탈 터는데, 갑자기 방금 전 선생님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리고 주말에 보았던 ‘차이 나는 클라스’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반가사유상이 소개되었다. 반가부좌를 하고(반가) 앉아 생각을 하는(사유) 불상(상)들이었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관람한 적이 있었기에 더 재미있게 시청했다.

그런데 방금 방광을 부여잡고 걸어온 그 길에서 몇 개의 반가사유상들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틀림없는 반가사유상들이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떠난 교실에서 반가부좌를 틀고 한쪽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그냥 멍하게 앉아 계시는 분도 있었고, 그 상태에서 모니터를 보시면서 마우스를 클릭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교실마다 앉아 있는 반가사유상들이라니! 웃음이 났다.

다시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 교실들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미안하지만 이번엔 좀 대놓고 쳐다봤다. 어떤 선생님과는 눈이 마주쳤다. 그냥 웃었다. 인사도 꾸벅.


그러나 자세 스캔은 놓치지 않았다.

유레카! 5개 교실에서 3개의 반가사유상을 만났다. 멍한 반가사유상도 있었고, 지친 반가사유상도 있었고, 거북목 반가사유상도 있었다. 조금은 다른 모습들이었지만 반가사유상은 분명했다.


반가사유상은 그 미소 때문에 유명하다.


주변국들에도 반가사유상들이 있지만, 그 각도나 표정, 표현방식이 한국의 반가사유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색하다.


그래서 미소와 자태가 수려한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K-미소’라는 별명이 있다.

방금 내가 본 교실 속 반가사유상들에게 ‘반가사유교사상’ 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사실 ‘반가사유교사상’들은 비교 대상도 학문적 의미도 없다. 모양도 제각각이고 미소와 자태는 아직 자세히 분석하지 못했다.(방금 지었으니까.)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또 ‘반가사유교사상’을 찾았다. 다행히 2점(?)을 더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슬며시 찾아보았다. 아침엔 못 찾았다.


신기한 것은 ‘반가사유교사상’은 주로 아이들이 떠난 빈 교실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왜 일까? 왜 ‘반가사유교사상’은 오후에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교사에게는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 주로 오후에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주로 오후에만 발견되는 ‘반가사유교사상’은 그들의 하루를 말해준다. 그들을 잘 살펴보면 그들이 겪어 낸 시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그래도 스스로 만족할만한 괜찮은 수업이 있었는지, 하루 종일 싸움박질(?) 뜯어말리느라 그저 힘겨운 시간이었는지, 쉬고 싶긴 한데 지금 당장 긴급 공문을 처리해야 하는 것인지.


그들의 자세와 표정은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주로 지쳐있었으며, 생각이 많아 보였다.

나는 조금 멋있기도 가엽기도 한 그들의 별명을 ‘K-교사’라고 지어주기로 했다.


‘K-교사’


이 별명에는 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다.


열정, 기쁨, 사랑, 좌절, 실망, 자책, 슬픔.


단언컨대 ‘반가사유교사상’은 반가사유상 만큼 자세히 관찰할 만한 가치가 있다.


어떤 하루를 보냈든 분명 그들은 가치가 있다.


(여러분도 당장 ‘반가사유교사상’이 되어보십시오. 그 자세를 했었던 언젠가가 문득 떠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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