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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이야기


“언니, 완전 별로였어.”


소개팅을 마친 사촌 동생과 통화했다. 사촌 동생도 초등교사다.


“그 남자가 ”요즘 초등교사 ‘개꿀’이라던데요? “ 이러더라? 자기 친구가 초등교사인데 그런 말을 했데. 처음부터 완전 빈정 상했어.”


“진짜? 뭐야 그 사람! 완전 별로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해줬지.”


“뭐라고?”


“학교에서 해야 하는 일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데, 그 친구분이 꿀 빨고 있는 거면 다른 분이 그분 대신 어딘가에서 고생하고 있는 거예요. 초등교사 절대 개꿀 아닙니다.”


“와우. 잘했어.”


나 같으면 어색한 미소만 짓고 넘어갔을 텐데 야무진 사촌 동생은 멋지게 멘트 정리를 잘하고 왔다. 듣고 보니 속이 다 시원해졌다.


미디어의 발달로 초등교사에 대한 오해와 환상 같은 것들은 많이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들은 사라지지도 않고 언제나 화수분처럼 끝없이 나온다.


사람들은 교사의 방학, 연금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다.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고 그저 ‘카더라’에 의지하여 교사들 욕을 실컷 한다.


‘그래, 이제껏 욕 들어줬으니 내 이야기도 좀 해보자’ 하며 하루하루 버텨내는 치열한 교실이야기는 꺼내려고만 하면 금세 도망가 버리고 아무도 없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 말 만하고 가버리는 사람.


전 세계를 통틀어 그런 사람은 진짜 별로다.

왜 사람들은 평소에는 멀쩡하다가도 교사들만 만나면 저렇게 별로인 사람들이 되는 걸까?(이 질문에 답하자면 교육의 역사와 전통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일단 질문만 던져봅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교사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걸까?


어떤 선배는 하나하나 다 정확하게 설명해주라고 했다. 또, 어떤 선배는 다 설명해줘도 듣지도 않는 거 그냥 자랑이나 실컷 하고 끝내버리라고 했다. 결국 그 사람들이 듣고 싶은 소리는 “맞아요. 저희 꿀 빨아요.” 이것이 아니겠냐며.


어쨌거나. 나는 학교에서 늘 꿀 빠는 교사는 아니었다. 내 사촌 동생도 그렇다. 어느 날은 자의로 또 어느 날은 타의로 늘 열심히 꿀을 옮기는 사람들이었다.


꿀 빨고 싶은 생각은 누구나 간절하다. 그런데 막상 출근하고 나면 그게 잘 안된다. 내 주변의 대부분의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한 명 한 명 물어본 적은 없지만) 다들 힘들다면서 막상 닥치면 엄청 열심히 한다. 교사 집단의 특징이다. 책임감이 강해서 그냥 내버려 둬도 열심히 한다.


물론, 모든 집단이 그러하듯 그 안에서 꿀 빠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본인은 모르고 있을지도)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교사가 꿀 빨기를 지향하고 있지는 않다. 어쩌다 보니 결과적으로 꿀 빨게 된 경우는 있어도, 치밀하게 꿀 빨기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교사는 없다. 그리고 올해의 꿀 빨기가 내년의 꿀 빨기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도 알기에 교사들은 늘 겸허하다. 그런데 학교 밖 사람들은 교사들이 모두 꿀 빨기를 좋아하는 꿀벌들인 줄 안다. 난 그게 너무 슬프다.


내 앞에 놓인 것이 문서라면 그래도 좀 요령을 부려보겠는데, 내 앞에 놓인 것(?)은 ‘어린이’들이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적어도 25명 이상이다. 25종류의 유기체들이 교실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사건과 사고를 만들어 낸다. 당신이라면 이 현장에서 과연 꿀 빨 수 있는가?


솔직히 꿀 빨려고 하면 할수록 나만 괴로워지는 곳이 교실이다. 차라리 꿀 빨 기대와 상상은 저 멀리 던져버리고 지혜롭게 현장에 임하는 것이 교사의 정신 건강에 더 이롭다.(선생님들 맞쥬?)


그런데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혹시 아무도 모르게 지속적으로 학교에서 꿀 빨고 계신 분이 있다면?

은밀하고도 긴밀하게 만나고 싶다. 그리고 부탁하고 싶다.


그 꿀 좀 돌려 먹으면 안 될까요?


오늘은 제가 1등을 좀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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