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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1학년 유니버스



전쟁 같은 3월을 보냈다.


‘그래, 한 달만 참자. 아이들에게 욕심부리지 말자. 너무 힘들어도 학부모님께 절대 바로 전화하지 말자. 곧 좋은 날이 올거다.’

이런 마음으로 한 달 동안 학교를 다녔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힘든 마음을 꾹꾹 누르면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돕기로 마음을 먹었다. 학부모님들께 종종 ‘무섭지는 않지만 단호한 교사’라고 평가받는 나는 꽤 자신 있었다. 한 달만 신경 써서 고생하면 학급이 그래도 잘 운영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우리 교실은 영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교직 생활 동안 세 번의 1학년 담임 경험이 있었다. 게다가 작년에 다문화 학교 적응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책도 내지 않았는가!) 그래서 올해도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어리석었다. 다문화 1학년을 너무 얕잡아 봤다. 이곳은 ‘당연한 것’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 세계였다. 요즘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지금부터 판타지 같은 이 세계, 다문화 1학년 유니버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다문화에 대한 편견을 심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제가 실제로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팩트 중심으로 소개하는 글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첫째,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일단 학급의 반 이상이 중국, 동남아시아계 학생들이다. 한국 문화에는 익숙하지만 아직 어리다 보니 한국어 말하기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이 많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러시아계 학생들이다. 다행히 3명 중에 1명은 그래도 한국말이 가능해서 이 학생이 주로 통역을 맡는다. 그런데 언어 실력이 부족한지라 통역이 완벽하지는 않다. 본인 수준에서 통역이 어려울 때는 ‘지금은 통역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AI처럼 말해준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한참 고민하고 알아차렸습니다. 직접 들으면 더 귀엽습니다.) 3명 모두 다문화 특별반(한국어 교실)에 지원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사유는 더 시급한 아이들이 많아서였다. 한마디로 우등생들.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굉장히 고민이 많았습니다.)


둘째, 본능의 에너지가 강력하다. 매일 목이 터져라 가르쳐 주고 또 가르쳐 줘도 아이들은 결국은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 (오마이갓!) 학교규칙을 가르쳐 주고 잘 하는지 지켜보고 최선을 다해 칭찬과 응원을 매일 반복했지만 좀처럼 내면화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야말로 ‘소귀에 경 읽기’였다. 내 말이 아이들 귀에 들어가기는커녕 바로 튕겨나는 느낌이었다. 힘들고 외로웠다. 교실이 아수라장이 될 때마다 종종 희망의 끈을 놓게 되었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좀처럼 찾기 힘든 사막이었습니다.)


셋째, 정리 정돈이나 위생 개념이 부족하다. 나 또한 그리 깨끗한 편은 아니라서 누구를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보통 1학년을 지도하다 보면 책상 주변 정리가 안 되는 학생이 학급당 2-3명쯤은 있다. 플리마켓 참가자처럼 물건을 본인 주변에 늘어놓거나, 피사의 사탑 마냥 한없이 쌓아두는 학생들은 많이 봐 왔기에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그런 학생들도 꾸준히 지도해서 결국 정리가 어느 정도는 될 수 있도록 도왔던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정리가 전혀 안 되는 학생이 7-8명쯤 된다. 교실은 매일 아수라장이고, 만들기를 한 날의 교실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다음은 위생 개념에 대하여 말할 차례인데, 혹시 비위가 약하신 분이나 임산부는 이 부분은 읽지 않는 것이 좋음을 미리 안내하고 싶다. (혹시 다문화 1학년에 대하여 궁금하신 분은 나라면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할지 한 번쯤 생각해 보셔도 좋습니다.)


마스크를 당당하게 내리고 코를 흥 풀어버리고는 본인의 손가락으로 풍성한(?) 누런 코를 가리키고만 있는 학생(결국 견디기 힘든 제가 달려갑니다.), 책상 위에 흘린 물을 핥아먹는 학생(깜짝 놀랐습니다.), 먹기 싫은 음식을 책상 속에 넣고 갖고 노는 학생(절대 급식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흘린 국을 닦는다며 휴지로 닦더니 갑자기 주저앉아서 젖은 휴지를 갖고 노는 학생 등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하는 학생들 앞에서 길을 잃었다.


몇 년 전까지 본교 1학년 담임은 너무 힘들고, 지원자가 하도 없어서 업무를 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예전에 6학년 담임교사 지원자가 없던 시절, 6학년 담임교사에게는 담임 역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업무를 주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전설 같은 이야기였지만 아무리 1학년이 힘들다고 해도 6학년보다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것은 ‘좀 그렇다’라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이해가 되었다. 왜 그랬는지를. 다문화 1학년 교실은 고유한 세계이다.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그냥 ‘유니버스’ 단어로 설명하고 싶다.

‘나 요즘 왜 힘들지?’

라는 질문에 이 글이 답을 줬다. 쓰고 나니 복잡한 마음이 좀 나아졌다.


어느 방송에서 한 예능인이 ‘예능은 구질구질할수록 잘 터진다’라고 말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부끄럽지만 요즘 나의 교실, 다문화 1학년 유니버스는 구질구질하다. 나 혼자 느끼는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정하고 싶지 않고, 부정할 생각도 없다. 글을 쓰면서 깊이 생각해 보니 교실 상황이나 내 감정이 구질구질한 거지 결코 아이들이 구질구질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핫(?) 한 연진이에게 편지를 쓰려고 한다.


“연진아, 나 지금 너무 신나.


구질구질할수록 더 잘 터질 거니까.”


내 속이 터질지, 내 글이 터질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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