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별 Jul 19. 2023

내 손가락의 안부

안녕하셨어요. 격조하였습니다.


올해 초의 이사를 전후로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하니 정신이 원래는 있었는지 모를 상태가 되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 하나는 둘째의 발달문제 치료를 위해 이미 일 년째 몸과 마음이 달리고 있기 때문이고, 다른 이유 하나는 한편으로 첫째를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같이 안고 달리기 때문이고, 마지막 이유 하나는 그러면서도 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이 둘을 안은 채로 카피를 쓰고 책을 그립니다. 이렇게 달리는 동안에도 돌봐야 할 집안의 대소사와 반갑지 않은 이벤트(아이 둘의 열, 중이염, 구내염, 장염…)는 쉼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첫째의 일정, 둘째의 일정, 나의 일정을 정리하고 수행하는 것은 좀비 떼가 두드리는 문 뒤에서 테트리스 게임을 하는 기분입니다. 내려오는 블록도 이미 쌓인 블록도 수시로 모양이 바뀌고, 어찌 맞출 때마다 내 수명이 하루치 연장됩니다.

그 스케줄이 외부의 사정으로 어긋나면, 망가지거나 변수가 생기면 견디지 못합니다. 요즘엔 인내심이 더욱 줄었습니다. 그나마 같이 달리던 남편도, 가끔이라도 의지하던 부모님도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입니다. 포위된 기분입니다.


하지만 오늘 걸려온 전화는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당장 보내야 하는 결과물. 다른 건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정과 페이에도 그냥 하겠노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말 그대로 1분도 쉬지 못한 하루를 재우고 장난감만 남은 거실에 쪼그려 앉아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정치와 정책을 요구하는 카피를 씁니다. 요 며칠 믿을 수 없는 뉴스 속의 그분들을 위해 나도 뭔가 하고 있다고 위안하면서. 폭우에 길이 잠기고 산사태가 쏟아지고 그냥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준비 없이 서로를 잃는 세상에서 나도 뭔가 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그러나 그러면서도, 나를 위해서도 누가 뭔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왜

깊숙이 다치거나 영영 떠난 이들 앞에서

나의 베인 손가락이 아픕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밤의 지하철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