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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지원 Feb 23. 2022

서른의 성장통

오늘은 집에 오자마자 화장을 지웠습니다. 아무도 없는 냉기 가득한 집에 오면 가장 먼저 보일러를 켜서 물이 데워질 때까지 tv 조금 보다가 화장실로 향하는데 오늘은 남기고 싶은 말들이 많아 찬물로 씻었습니다.  


지난 한 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팠던 것 같습니다. '아팠다'도 아니고 '아팠던 것 같다'라고 한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 거울을 보니 오른쪽 눈이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석 달 전쯤 비슷한 증상이 있던 터라 놀란 마음에 안과에 갔는데 의사가 대뜸 젊은이에게 자주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피검사를 해보자고, 내과 소견서를 써주었습니다.


소견서를 들고 동네 내과에 방문했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피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내과 의사는 내게 결과서를 들고 3차 병원으로 가라고 안내했습니다. 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였습니다.


혈액종양내과는 병원 암센터 안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모자를 쓴 환자들, 그 환자를 간호하는 가족들의 지친 얼굴을 지나쳤습니다. 병원의 적막함을 깨는 제 구두 소리가 어딘가 민망해지는 날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다행히, 큰 이상소견은 없었습니다. 한 달간 지켜보자는 말뿐이었습니다. 눈에 문제가 생기기 전날 회사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게 원인이었을까, 추측해봤습니다. 어쨌든 한쪽 눈을 벌겋게 한 채로 꼬박 일주일을 뉴스를 진행했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세상에 악한 사람이 있다고 믿지 않지만 악을 마주할 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에서 어떻게 좋은 사람만 만나겠느냐, 돈 버는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를 다독여도 상처받지 않고 초연해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재작년, 작년과 달라진 점이라면 직장 동료를 인간적으로 좋아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는 것입니다. 동료의 모든 면모를 사랑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어쩌면 비단 직장생활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통용되는 진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처받고, 분노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 누군가의 작은 호의에 사르르 녹고 맙니다. 같이 프로그램을 하는 부장님으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 받았습니다. 매일 밤 어찌나 고개를 끄덕이며 쉴 새 없이 밑줄 쳤는지 모릅니다.


듣고 싶은 말을 찾게 되는  독서의 묘미이자 함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책에서 받는 위로는 마치 엄마 처럼 포근하기만 합니다. 기쁨만큼 슬픔도 사람을 키운다는 구절, 객관적인 달성보다는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향을 높이 사야 한다는 구절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도 이런 책을 선물할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슬프고 화나고 기쁘고 고마운 날들이 지나갑니다. 그래도 슬프고 화나는 일은 쉽게 잊고 기쁘고 고마운 일들은 오래 간직하는 성질 덕에 기쁜 날이  많은 듯합니다. 내일 출근할 일터가 있고, 가진 능력보다   기회가 주어지고, 건강하게 지낼  있음에 감사하려고 합니다. 서른이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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