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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지원 Nov 12. 2021

고민하는 사람

    최근에 글쓰기를 멀리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메모장에 쌓여가는 글은 늘어났지만 브런치를 멀리했다. SNS 팔로워와 브런치 구독자가 늘고, 여기저기서 '글 쓰신 것 봤습니다' 하는 말들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보라고 올린 글이 맞는데, 어쩐지 내 바닥을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그런 의미에서 출간 작가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아무튼 몇 달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어서 쓰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한번 말을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어서, 그렇기 때문에 작은 실수가 용납되는 생방송이 녹화 방송보다 편하고 좋은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두려움과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다시 쓸 용기를 책에서 얻었다. 그간 고전이며 에세이며 닥치는 대로 읽었더니 다행히 용기가 피어났다. 좋은 글은 독자를 작가로 만들게 한다. 덕분에 오랜만에 노트북을 켰다.     


    요 며칠은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었다. 가슴에 큰 돌덩이 하나가 앉은 듯 종일 답답한 날이 이어졌다. 감정적이라 좋은 점은 기쁘고 행복할 일이 자주 있다는 것인데, 반대로 화나는 일과 슬픈 일도 많다. 물론 과거의 나보다는 몇 배로 그 감정들을 잘 조절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어렵고, 또 어렵다. 타인은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이제 어느 정도 알고, 사람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아야 되는 것도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으로 옮기기까지가 영 쉽지 않다. 적당히 내 도리를 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잘 달래며 사는 일. 앞으로 살면서 풀어야 할 숙제가 될 것 같다.     


    진행할 때 상대를 너무 쏘아붙이는 것 같다는 피드백은 다행히 더 이상 듣지 않는다. 반드시 들어야 할 말을 끄집어내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는데, 이제는 안다. 초보 시사프로 진행자의 과한 의욕과 서툰 기술이 만들어낸 결과였음을. 부드럽게 질문해도 핵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물론 아직 그 단계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여전히, 지금도, 나는 노력하고 있다.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때처럼 그날 내가 진행한 뉴스를 보면서 퇴근하고 전날 방송을 다시 듣기 하며 출근한다. 3년 전 어느 날과 지금의 일상이, 하루하루는 크게 달라지는 게 없어 보여도 긴 호흡을 두고 돌이켜 보면 질적으로 크게 달라진 모습을 발견하게 마련이다. 계단식 성장이라나? 나이를 먹을수록 느끼는 거지만 인생의 진리는 분야를 막론하고 통하는 것 같다. 변하지 않는(것처럼 보이는) 날들이 지나고 어느 순간 갑자기 달라진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니 변곡점이 생기기 전까지 버티고 갈고닦는 수밖에 없다. 오늘이 모여 내일을 만든다.     


    나는 어떤 진행자일까. 요새 그런 고민을 자주 한다. 캐릭터를 만들기 위함은 아니고, 얼마 전 개편 때 방송 중간에 나갈 소개 멘트를 새로 녹음해야 한다며 담당 PD 선배가 이름 앞에 붙을 수식어를 고민해보라고 던져준 이후부터다. 점심 메뉴도 쉽게정하지 못하는 나는 늘 그렇듯 이번에도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해서 결국 어떤 수식어도 붙지 않게 되었다. 결정할 시한은 한참 지났고 버스는 이미 떠났다. 그러나 방송 생활에 지침이 될 말 같아서 계속 고민하는 중이다. 쓰고 보니 '고민하는 진행자'라고 해야 할까 싶다.     


 코끝이 시린 걸 보니 어느덧 한 해를 보내줄 때가 되었다. 가는 시간만큼 나는 다만 조금씩 깊어지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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