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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지원 Mar 02. 2022

숫자 너머의 삶

 전국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20만 명 넘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오늘 경남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 이후 처음으로 하루 신규 확진자 만 명을 넘었고, 8명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대통령 선거과 코로나19,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거대 이슈에 가려졌지만 중요한 뉴스는 또  있습니다. 2020년 여름, 유례없는 많은 비로 수해 피해를 입었던 남강댐 인근 주민들이 피해 신청액의 33%만 받게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지금까지 42명이 죽었다는 보도도 함께 전했습니다.    


20만, 만, 8, 33, 42.    


 일반적으로 숫자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혹은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때문에 짧은 시간, 사안이 얼마나 심각하고, 중요한지를 전해야 하는 뉴스에서는 자주 사용될 수밖에 없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입사 초기에는 긴 숫자를 어떻게 읽나, 그런 것을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나름 터득한 방법이라면 숫자 위에 소리 나는 대로 적어두는 작은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조금 익숙해진 지금은 종종 숫자 너머의 삶을 상상해봅니다. 신규 확진자 20만 명 가운데는 분명히 하루를 쉬면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가장 먼저 특수고용직, 일명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떠오릅니다. 코로나로 목숨을 잃은 8명의 가족들은 어떨까요. 가족을 잃은 아픔을 견디고 있겠죠.

 수해 피해 신청액 중에 33%만 인정을 받았다면, 그 가운데는 여전히 컨테이너에 머물면서도 국가나 지자체로부터 한 푼도 못 받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루아침에 살던 집을 잃었는데도요.

 일하러 나가는 그 길이 생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42명은, 그 42명의 가족과 지인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건네지 못한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같은 시간이지만 전혀 다르게 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많은 장면들이 그려집니다.    


숫자에는 감정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다른 수와 비교할 때 비로소 많고 적음이 드러날 뿐 그 자체로 어떤 의미도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숫자가 너무 많은 것을 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 너머의 것을 보려고 할 때 우리가 의도했던, 숫자를 사용하려는 여러 목적들이 달성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숫자 너머의 슬픔과 상실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저라는 한 개인을, 그리고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밤이 깊은 이 시간, 셀 수 없이 많은 삶들은 각기 어떤 시간을 관통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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