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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지원 Apr 18. 2022

할매, 울 할매

꿈을 꾸었습니다. 이가 빠지는 꿈이었어요. 어딘가 께름칙해서 찾아보니 가족의 건강이 악화되는 흉몽이랍니다. 설마.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날 오후 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요.     


생방송까지 세 시간밖에 남지 않은 터라 급히 대체자를 찾기도 어려웠고 맡은 일은 하고 가는 게 맞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방송 중간중간 슬슬 웃어도 가면서 어찌저찌, 무사히 방송을 끝냈습니다. 그 길로 서울로 내달렸습니다.     


시속 300km 이상의 고속열차에서 풍경을 여유롭게 즐기기 어렵기도 하겠지만 그날만큼은 어떤 풍경이었는지 단 한 장면도 기억에 남질 않네요.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는 자연물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할머니와 추억이 참 많아요. 여름이면 꼭 비빔국수를 만들어주셨어요. 무더운 여름날 학교에서 집에 오면 대중없이 몇 스푼씩 대강 양념을 섞어서, 삶은 국수와 슥슥 비벼서는 제 입에 넣어주셨는데 그 새콤달콤한 맛이 참 좋았어요. 밥솥에 해 먹는 식혜. 온 가족이 몸살 났던 김장날의 김치, 손톱이 초록색으로 물들도록 먹었던 쑥떡도 전부 할머니가 해준 것들이에요.     


사실 할머니는 우리집 바람잡이였어요. 바퀴가 반짝이는 킥보드가 유행했을 무렵 부모님께 사달라고 졸라도 부모님은 끝까지  사주셨거든요. 그럴  할머니가 나서서 부모님을 다그쳤어요. ‘너희  벌어서  뭐하냐,  그런 것도  사주고그러자 그다음  기적처럼 퇴근길 아빠 품에  리본이 달린 최신형 킥보드가 들려있던  아니겠어요? 그렇게 얻어낸 것들이 모르긴 몰라도 킥보드뿐만은 아닐 거예요.     


할머니는 내가 친구와 싸우고 오면 누가 더 많이 때렸냐고 꼭 물었어요. 맞았다고 하면 혼이 났고, 때렸다고 하면 칭찬을 했어요. 또래보다 유난히 체구가 작아서 매일 맞고 다니진 않을까 걱정이 되셨던 것 같아요. 울 땐 꼭 소리 내어 울라고도 가르치셨네요. 그래서인지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았나 봐요.     


엄마 몰래 재봉틀로 손녀딸 교복도 줄여주고, 머리카락도 늘 예쁘게 땋아줬어요. 일하느라 바쁜 엄마의 빈자리를 운동회 때, 졸업식 때, 그런 기념식 때마다 할머니가 채워주셨어요. 나이 오십에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했던 할머니의 노력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듣기론 마지막 가시는 길도 할머니 다웠습니다. 자식에게 짐 되기를 끔찍하게 싫어하고 깔끔하고, 자존심 강한 그 모습 그대로. 침대에서 주무시듯이 숨을 거두셨어요. 남은 사람들에게 이별의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은 게 내심 속상하긴 하지만 어쩌면 할머니에게 가장 바람직하고, 가장 아름다운 끝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한 줌 재가 된 할머니를 보며 인생이 참 허망하다 싶다가도 이렇게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 산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생각을 고쳐먹네요.      


할머니 때문에 내 취향이 또래에 비해 촌스러워진 것 같다고 투덜대기도 했지만 지금 내 친구들 중에 현철의 사랑의 이름표를 다 부를 줄 아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울 할매 덕분에 인사성 밝고, 트로트도 잘 부르고, 승부욕도 강하고, 욕도 잘하고(?) 그렇게 잘 컸어요. 정말 할매 덕분이에요. 근데 서른이 되도록 키워주셔서 감사하단 말 한마디를 제대로 못했네. 할매 키워주셔서 참말로 고마워요. 할아버지 곁에서 편하게 행복하게 지내셔요. 거기선 무릎도 안 아플 테니 여행도 많이 다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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