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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지원 May 25. 2023

여행

지금 여기에서 가장 좋은 것을 좋아하자/김연수

  

 일주일 휴가를 내고 향한 곳은 신혼집이었다. 남편의 출근을 배웅하고 함께 저녁을 먹는, 남들에겐 아주 당연한 일상이 나에게는 휴가를 내야만 주어진다는 사실에 조금 섭섭하기도 했으나 그 덕에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과 애틋함을 더 깊게 아로새길 수 있게 된다.


  세 해 전 발리로 떠났을 때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것을 꼽으라면 단연 요가 수업이었다. 스콜이 쏟아진 뒤에 촉촉히 젖은 땅을 밟아 요가원까지 향했던 길,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열심히 곁눈질했던 기억. 비 온 뒤 흙냄새마저 서울의 것과는 조금 다르게 생경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모든 경험이 다 새것이었지만 그 보다도 나흘 뒤면 다시 한국에 가야한다는 사실사실, 죽기 전에 언제 또 발리에 와서 요가 수업을 들어보겠느냐 하는 생각. 그러니까 결국 끝이 있다는 생각 덕에 그 날의 모든 것이 더욱 특별하게 여겨졌으리라.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신혼집 근처 요가원에서 매일 수련했다. 벌써 신혼집에 들어온 지도 1년 하고도 6개월이나 지났는데 20분 거리의 요가원까지 낯선 가게들이 참 많았다. 근처 네일숍, 과일 가게,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를 보며 ‘다음에 저곳을 가봐야지’ 같은, 지키지 않을 귀여운 결심을 해보며 산책 나온 강아지,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향하는 노인. 눈 앞의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5월 말 평일 아침의 응암동은 한적하고 소담했다. 따사로운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쬐었다. 내 발걸음도 동네의 속도를 따라 조금씩 속도를 줄여갔다.


”요가 수련은 처음이세요? “

”아 아뇨, 한 지는 꽤 됐는데 여전히 초보 수준을 벗어나질 못하고 있어요 “

”근처 사시나 봐요? “

”네, 근데 근무지가 멀어서 주말에만 여기서 지내요. 지금은 휴가 냈고요 “


 선생님과 나 사이엔 이름과 휴대폰번호, 계좌번호가 오갔고 이 정도의 대화가 전부였다. 어색한 침묵만 깰 수 있는 정도의 깊지 않은 대화. 여행자만 느낄 수 있는 특권이었다.


나마스떼 ㅡ함께 수련한 사람들과도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요가 수련과 산책 이외엔 하루 열 시간 넘게 책상에 앉아있느라, 턱밑까지 쫓아온 시험 일정에 마음까지 바빠져 온전히 휴식을 취하지는 못했지만 일상을 여행처럼 산다는 말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큰 마음을 먹고 큰 돈을 써서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어느 낯선 곳에 가야 비로소 여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매일 새 날이 밝는다. 내 삶이 오늘이 끝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매일이 곧 여행인 셈이다.


그날 그날 주어진 것들을 눈과 가슴에 담으면서 그렇게 순간을 사는 순간, 우리는 모두 여행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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