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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지원 Nov 14. 2023

따로 또 같이

김해 초등학교 방화셔터 사고

 사람 이름을 딴 법안들은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인식되기 때문에 언론과 정치권에서 자주 사용된다. 스쿨존에서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겠다는 취지로 개정된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민식이 법’이 대표적이다. 물론 가해자도 아닌 피해자, 그것도 어린아이의 이름을 꼭 법안에 붙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다시는 비슷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법안으로나마 아이를 기억하는 사회를 용인하는 쪽을 선택한 듯싶다.


  2019년 9월 30일,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날이었다. 당시 아홉 살 서홍이는 등교시간 학교에서 갑자기 내려온 방화셔터에 목이 끼이면서 크게 다쳤다. 함께 있던 형이 다급하게 선생님을 찾았다. 그러나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서홍이는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다.


 얼마 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학교 시설관리자가 사고 직전 방화셔터의 램프가 깜빡이자 하자가 있는지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별다른 안전조치 없이 작동 버튼을 눌렀던 것. 서홍이는 그날 이후 갓난아이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 원인은 저산소성 뇌손상이었다.


 학교 안전공제회에서 병원비 일부가 지원됐지만 한 달에 500만 원에 달하는 간병비와 치료 외 소모품 비용은 오롯이 서홍이 부모님이 부담해야 했다. 이러한 사정이 알려지자 학교 학부모회와 운영위원회에서 모금운동에 나섰다.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서홍이의 이름을 딴 법도 국회를 통과했다. 학교 안전사고로 발생한 간병비와 부대 경비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사고 발생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학교 행정실장에게 벌금 천만 원이 확정되었다. 학교의 소방안전관리자로서 시설관리 담당자를 교육하고 감독할 책임이 있는데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혐의가 인정됐다. 시설관리 담당자는 항소심에서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학교장은 혐의 없음.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직후 곳곳에서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감독, 지휘를 할 수 있는 실질적 책임자인 학교장을 소방안전관리자로 둬야 한다는 의견과 각 교육지원청별로 안전 전문 담당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는 의견 등 사고를 막을 대책에 대한 제안은 꾸준히 나왔지만 교육청으로부터 논의 중이라는 원론적인 답만 들을 수 있었다.


 비단 이번 사건뿐만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각종 사회적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정작 책임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쏙 빠지고 하위 실무자들에게만 책임이 전가되는 모습을 우리는 쉽게 보아왔다. 바꿀 힘이 있는 사람 따로, 책임지는 사람 따로인데 무엇이 얼마나 바뀔 수 있을까? 안전한 학교,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따로 있지 않다고 믿는다.


 다시 서홍이와 서홍이 가족을 생각한다. 서홍이는 여전히 병상에 누워있지만 어느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그 사이 누구 하나 나서서 사과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홍이를 응원해 주신 분들한테 감사 인사도 드리고 싶었어요. 서홍이가 직접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드린다는 상상도 많이 해요. 언젠가는 좋은 날에 서홍이가 직접 인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쭉 치료하려고요.

서홍이 어머니 이길예 씨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이렇게 전했다. 같은 마음이다. 많은 이들이 같은 마음일 것이라 믿는다. 언젠가 서홍이가 건강을 회복해 사람들을 향해 방긋 웃어주고, 책임 전가하느라 바빴던 어른들을 향해 쓴소리를 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아이들의 이름을 딴 법안이 다시는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그럴 필요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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