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월간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싱지원 Jan 04. 2024

청춘의 한 페이지

2023년 회고

하나 아닌 둘

 한 해의 시작은 결혼식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데 불러 모아놓고 맛있는 식사 한 끼 대접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축하받는 자리. 황홀했다. 하지만 결혼식과 결혼은 전혀 다른 법. 주말만 함께 지내는 덕분에 안정감이라는 결혼의 장점만 누리고 있어 결혼이라는 제도와 그 안의 삶에 대한 판단은 아직 이른 듯 하지만 다행히 기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중이다. 사람이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정해져 있다고 한다. 불안정한 관계를 안고 가는 데에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니 자연스럽게 다른 부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게 올해 일터에서의 성취를 견인한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절대적으로 지지해 주고, 남에게 쉽게 드러내지 않는 근사하지 않은 모습까지 사랑해 주는 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커리어 하이

 연초에 썼던 일기장을 들춰보니 ‘커리어 하이’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때 나는 올해 벌어질 일들을 미리 알았던 걸까. 올해 지역 총국 라디오 비교평가에서 상반기, 하반기 모두 1등을 했다. 사내 우수프로그램 진행상을 받았고, 화룡점정으로 아나운서대상 라디오 시사 부문 진행상까지 거머쥐었다. 내가 앉은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성취의 정상이다. 그렇다고 내가 진행하는 모든 방송이 마음에 들고, 어디다 내놔도 부끄럽지 않다는, 질적인 부분의 완성은 아니지만.

 길게는 10년 정도로 봤던 시점이 5년 차에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때부터 시작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 시점에 도달하는 순간 성장을 멈추게 될 거라는 일종의 선고처럼 느꼈다. 그래서 다음 스텝이 내게는 절실했다. 이 고민은 24년에도 이어진다.


반복이 주는 즐거움

 요가와 달리기를 빼놓고는 올 한 해를 이야기할 수 없다. 봄부터 겨울까지 세 계절을 꼬박 요가 수련을 했다. 경험상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소위 코드가 맞는 스승이 필요한데, 타고난 유연성을 자랑하며 그럴듯한 자세를 보여주는 과거 내가 만났던 여러 선생님들과는 다르게 그야말로 수련에 가까운 수업을 진행하는 '진짜'를 만났다. '피하지 말라. 직면하라' '용쓰지 말라' '뿌리를 잘 다루면 가지는 따라올 뿐이다'같은 말들은 비단 요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삶에 임하는 태도와 관련된 것들이었고, 그 점이 나를 꾸준히 요가원으로 이끌었다.

  틈틈이 했던 달리기도 요가와 닮은 구석이 많다. 숨이 들고나가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는 점, 몸을 움직인다는 점, 하는 동안 생각이 비워지면서 그 자리에 건강한 생각이 자리한다는 점 등이 닮았다. 노무사 2차 시험이 끝나고 퍼져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홧김에 충주 사과마라톤 대회 신청을 했고, 그 결단(?) 덕분에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10km 달렸다는 자그마한 성취도 이렇게 기록할 수 있게 됐다. 결승점을 통과하는 순간도 물론 기뻤지만 반환점을 돈지 얼마 안 됐을 때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들으며 양손을 번쩍 들고 달렸던 그 순간의 해방감이 보다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요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옆 베이글 가게에 가 크림치즈를 듬뿍 바른 베이글을 포장해 조수석에 두고 수련 내용을 복기하면서 집으로 가는 시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달린 순간. 대단한 성취나 그럴듯한 결과보다 이런 작은 일상 속 반복과 과정들이 내게 큰 행복을 준다는 걸, 만 서른이 되어서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는 점에서 나이듦은 축복이다.


 만 나이가 도입되면서 두 번째 이십대를 선물받았던 해. 머리쓰는 일, 마음쓰는 일, 몸쓰는 일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던 해. 살았던 모든 해를 합쳐 제일이었던 한 해였다. 내게 주어진 삶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