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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유 Oct 24. 2023

효리네 민박을 꿈꾸시나요?

예비 펜션창업주에게 보내는 편지

자연 속에서 펜션지기를 하는 삶의 장점을 담은 1편에 이어, 이번에는 펜션지기 삶의 민낯을 들춰보려 한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지겨운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펜션 운영을 꿈꾸는 직장인들

빼곡한 빌딩 숲을 벗어나 리틀포레스트처럼 펜션 운영하며 자연 속 삶을 살고싶은 사람들

• 효리네 민박을 보고 펜션지기의 삶을 꿈꾸게 된 사람들


펜션 운영을 꿈꾸는 예비 창업주분들께 바치는 헌정 글입니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펜션 라이프는 현실과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펜션지기의 일일


우선 펜션지기의 일과를 설명해 보겠다. 현재, 어머니의 부재로 아버지와 나 단둘이 펜션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금부터 나열하는 일들은 아버지와 분업해서 처리하고 있다.

분리수거장 청소, 쓰레기 컨테이너장에 가져다 버리기, 린넨침구 세탁, 수건 세탁, 세탁물 개키기, 청소 아주머니 스케줄 관리, 청소할 객실 배정 및 점검, 비품 체크 및 주문, 체크인 안내, 컴플레인 대응, 바베큐 세팅, 바베큐장 청소, 난방 및 온수 체크, 객실 추가이불 넣어주기, 전화예약상담, 온라인 예약 채널 관리, 블로그 홍보글 포스팅, 객실 설비 점검 및 수리


지금 생각나는 대로 나열한 것만 이 정도다. 이 모든 일들을 2명이 하고 있다. 청소 아주머니 스케줄이 꼬이거나, 갑자기 펑크 나는 경우 객실 청소도 하게 되는데, 그런 날은 정말 하루가 고단하고 고달프다. 체력이 바닥이니 손님을 응대하는 것도 더 힘들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펜션지기의 하루 일과는 그러하다. 일로 시작해서 일로 끝난다. 물론 보다 적은 일을 하며, 여유롭게 운영할 수도 있다. 돈을 쓰면 된다. 세탁도 업체에 맡기고(시트 1장당 1500~3000원), 예약 관리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수수료 15~20프로), 관리 직원을 고용(최소 월 250 이상)하면 된다. 간단하다.

  

극한직업 펜션지기

여기가 바로 나태지옥

우리 펜션은 산속에 있어서 벌레가 참 많다. (덕분에 외롭지 않다) 하룻밤 자고 나면, 복도와 외부계단에 벌레 사체들이 널브러져 있고, 온갖 곳에 거미줄이 쳐져있다. 객실 청소량이 적은 날에는 복도 청소와 거미줄 청소도 청소 아주머니께 부탁드리지만, 매일 요청할 수는 없다. 고로 쉴 틈이 없다. 눈길이 닿는 모든 지점이 다 일감이다. 내 손에 물 묻히기 싫고, 고생하는 게 싫다면 펜션 운영은 발도 들이지 않는 게 좋다.


매일매일 쳐내야 하는 루틴 같은 일도 산더미인데, 실시간으로 퀘스트가 더해진다. 세탁실에서 하고 있으면, 체크인하러 손님이 온다. 체크인 안내를 하고 나면, 바베큐장 세팅을 해달라며 손님이 온다. 바베큐장 세팅을 마치고 다시 세탁실에 가려고 하면 예약 전화가 온다. 예약 상담을 마치고 나면 체크인 손님이 온다. 잠시 숨 돌리고 커피를 한잔 타면, 손님이 말을 건다. "여기 근처 식당 어디가 맛있어요?" 그렇게 세탁실에 쌓인 세탁물은 미궁 속으로 사라지고, 우리는 일의 굴레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펜션은 집안일과 비슷해서, 일을 하는 건 티가 잘 안 나는데 일을 게을리하면 티가 난다. 게을러지는 순간 손님이 받게 되는 서비스의 질이 훅 떨어지는 것이다. 직원에게 맡기기만 하고 점검을 소홀히 한다면 머지않아 객실은 엉망이 된다. 화장실 구석에는 곰팡이가 피고, 창틀에는 먼지가 쌓이고, 침대 이불에 어디선가 따라붙은 머리카락이 안착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청소도 직접 해야 한다. 매번은 할 수 없지만, 주기적으로 직접 청소를 해야 객실 청소상태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펜션이 더 업그레이드될지, 손님이 어떤 지점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지, 그 불편함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개선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는지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손님들에게 만족을 주고, 영업을 이어나갈 수 있다. 한 번 온 손님이 또 오고, 다른 손님을 데리고 오고, 함께 오지 않더라도 다른 지인에게 우리 펜션을 소개해준다. 수백만 원 들인 마케팅보다, 손님들의 가지치기가 짱이다.


레드오션이 돼버린 숙박업에서 살아남으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비수기라고 퍼져있어서는 안 된다. 다가올 성수기를 대비해야 한다. 감히 단언하건대, 성수기 펜션은 나태지옥이다. 쉴 틈이 없다. 나태지옥을 버틸 자신이 없다면 돌아나가라.


나를 내려놔야 할 수있는 일 

펜션 일은 참 고단하다. 몸을 쓰는 일이 많다. 쓰레기장을 치우는 일, 객실 청소하는 일, 손님들이 사용한 침구를 세탁하는 일 등 이 꼴, 저 꼴, 더러운 꼴을 많이 보게 되는 일이다. 웬만한 걸 봐도 놀라지 않는 나의 모습에 가끔 흠칫 놀란다. 새끼 바퀴벌레를 봐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 스스로를 보며, 이제는 아가씨보다는 아줌마 쪽으로 많이 기울어졌구나 싶다.


청소는 몸도 고단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게 마음이었다. 고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나의 자존을 상처 냈기 때문이다. 20대에 수많은 알바를 경험해 보았지만, 객실 청소는 다른 장르였다.


'사람들은 여행 다니는데 나는 뭐 하고 있지?'

'내가 왜 이 사람들이 어지른 걸 치우고 있어야 하지?'

'내가 이러려고 4년제 대학 나와 그렇게 치열하게 산건가..'


지금 생각하면 참 못난 생각이지만, 펜션을 '내 일'이 아닌 '부모님의 일'로 여기고 일을 할 당시엔 이 생각이 나를 가장 많이 괴롭혔다. 20대에 하는 고생은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서 하는 경험이라고 받아들였지만, 왜인지 30대가 되어하는 청소일은 유쾌하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젠 객실 청소를 하게 되어도, 더 이상 자존이 상하지 않는다. 나와 가족들의 삶을 영위하게 하는 감사한 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해지 고나니 태도가 달라졌다. '에고'를 내려놓고, 일을 일로만 바라보는 것이 펜션을 운영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에고가 강했던 1인으로서, 이 삶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일이 정말 힘들었다. 혼자 하는 사업이었다면 못 버텼을 것 같다. 대안이 없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고가 강한 사람에게 몹시 도전적인 (가혹한) 업무 환경이다. 내가 나를 내려놓고, 에고도 자존심도 모두 내려놓고 일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바란다.


3.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 다채로운 진상의 향연

진상은 나이 불문, 성별 불문, 국적 불문이다. 이 일을 하며 얻은 진리가 하나 있는데, 이유 없이 호의를 베풀면 무조건 뒤통수를 맞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희한한 일이지만, 다년간 쌓은 데이터로는 그렇다. 괜히 이유 없이 방을 업그레이드해 주면 그 방에서 컴플레인이 들어오고, 얼리 체크인을 해준 사람들 때문에 소음 신고가 들어온다.


장발장도 참 많다. 샤워기 헤드, 과도, 가위를 비롯한 식기류, 심지어는 와이파이 공유기까지 훔쳐간다. 비품실에 들어가서 생수와 비품을 챙겨가기도 하고, 다른 업소 수건을 두고 우리 수건을 가져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손님이 두고 간 유명 숙박업소 수건을 보며, 속도 없이 '우리 수건이 더 좋네'하며 흡족해한 적도 있다. 가져가는 게 차라리 낫다. 수건으로 더러워진 등산 장비와 등산화를 닦고, 세차하는 데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도 주인이 보는 앞에서! 세상에는 참 다양한 진상들이 있고,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진상 에피소드는 따로 정리해서 글을 올리기로 하고, 넘어가겠다.


4. 워라밸이 뭐죠? 먹는 건가요?

여름휴가철과 가을 단풍철에는 수면, 식사, 휴식 모두 엉망이다.


밤낮없이 울리는 손님들 예약 전화, 컴플레인 전화로 인해 수면의 질이 바닥이다. 혹자는 상담시간을 정해두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투숙 중인 손님 컴플레인 연락을 받아야 해서 벨소리를 무음으로 설정할 수가 없고, 통화 연결음으로 상담시간을 안내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다. 새벽 3시에도 상담전화가 걸려온다. 심지어는 새벽 6시에 숙직실 방 문을 두드려 나가 보면, 잘 쉬고 간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식습관도 엉망이 되기 쉽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해야 건강한데, 밥 먹다가 뛰쳐나가기 일쑤, 만실인 날에는 식사를 건너뛰는 경우도 많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손님이 안 오지? 하면 세탁실에 가거나 화장실에 가면 된다. 세탁실에 내려가서 세탁을 하려고 하면 꼭 손님이 체크인하러 오고, 내내 데스크에 있다가 잠깐 화장실을 가도 손님이 온다. 식사시간도 예외는 아니다. 밥 먹으려고 한술 뜨면, 어김없이 손님이 온다.


방심하는 순간, 일에 파묻히기 딱 좋은 직업이다.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처리하느라 나를 챙기는 일은 뒷전이 되기 때문이다. 고로, 펜션을 하려거든 미리 체력을 단련시켜 두길 추천한다. 그래서 나는 비수기에 요가인으로 살고, 성수기에 일꾼으로 살며 연명하는 중이다. 건강을 더 챙기고 신경 써야 하는데.. 글을 쓰며 반성한다..


돌아가세요


친애하는 예비 펜션 창업주님들에게,

여기까지 긴 글(푸념)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펜션지기의 삶은 참 매력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고충들도 있답니다. 부디 현명하게 판단하시어 되도록이면 다른 길을 택하셨으면 합니다. 너무나도 레드오션인 펜션지기의 세계.. 이제 그만오세요..! 다들 돌아가세요 제발..!!


이러다 다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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