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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seul Cho Oct 11. 2018

문과생의 실리콘밸리 인턴기

보고 듣고 만나고 경험하는 모든 것

Prologue.

근무 시작 후 처음 놀러간 샌프란시스코


작가라고 해서 아름답고 멋진 글을 써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휘황찬란한 글은 아니지만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인턴 생활을 하게 되면서 하루 하루를 기록하는 글을 쓰고자 마음 먹었다. 이곳에 적응하며 바쁜 나날에 엄두를 못 내던 차에, 나의 하루를 기록하는 동시에 그것을 다른 이와 나눌 수 있는 브런치가 마음에 들어왔다. 4개월간의 인턴 일기, 그리고 내가 배워가는 과정을 기록해볼까 한다.


#1. 내 전공이 아닌 일을 생각하는 것


  중학생 시절부터 소망하던 통번역학과에 입학 후 통대 진학만을 줄곧 생각해왔다. 문과는 먹고 살기 어렵다는 취업 시장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AI가 지배적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통번역은 내리막길이라며 걱정하는 이야기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나는 모두가 선택한다는 상경계열을 이중전공으로 선택하지도 않았다. 나의 이중전공은 일본어이다.)


  그러다 문득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까지 사서 걱정하며 사는 내 성격에, 불안정한 프리랜서로 버티며 통역에 올인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나의 예상을 벗어나는 범주의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고학년이 되고 취업이 현실로 다가오니 안정적인 직장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나 아들러 심리학이 정의하듯, 나는 새로운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기피하고자 스트레스라는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재학 내내 과외며 회사 계약직이며 나름 대학생이 학업과 병행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꽤 해봤다고 자부했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모두 내가 '할 줄 아는 일'이었다. 영어 강사, 영어 번역, 영어 통역. 그래서 나는 해본 적 없고, 할 줄 모르는 일을 해보면 역설적으로 내 진로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지 않을까 싶었다.


#2. 내가 해본 적 없는 일: 주 5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하기


  인턴 자소서를 넣을 무렵에만 해도 '자소서가 뭐가 그렇게 어렵지? 그냥 쓱 쓰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오만한 생각이 있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회사를 알아보고 항목마다 몇 백자씩을 요구하는 자소서를 보면서 완전히 방향을 잃었다. 내 자소서에는 '경력'은 몇 줄 있을지언정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긴 유학생활이 나의 '경험'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4학년을 앞두고도 교환학생은 생각하지 않았고 학교에서 연계하는 다양한 해외 프로그램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학과장님과의 면담에서 코트라 해외무역관 인턴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실리콘밸리 무역관.


  대한투자무역진흥공사. 나는 무역에 관해 아는 것이 전무했고 짧은 시간이지만 다시 해외생활을 하러 가야 한다는 이런저런 걱정에 고민이 되었다. 게다가 '나는 문과생인데... 실리콘밸리에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문과생에게 실리콘밸리란 어떤 의미일까? 앨론 머스크가 전기차를 만들어낸 그 곳? 소셜미디어의 강자 페이스북이 탄생한 그 곳? 그러나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실리콘밸리에서 인턴을 해 볼 기회가 얼마나 될까?'


  지원하기도 전에 이런 김칫국 한 사발 마신 것 같은 걱정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합격이 되었다. 떠날 준비를 하면서 내 머릿속에는 온통 '실리콘밸리에서만 얻어올 수 있는 무언가를 배워오자' 하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3. 실리콘밸리의 직업 세계


  근무 시작 전 내가 배정받은 팀의 인수인계서를 꼼꼼히 읽고 당연스럽게 이전 업무를 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굉장히 다르고 특이한 미션을 받았다. 바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실리콘밸리의 직업세계를 탐험하는 것. 이 곳에서의 인맥이 전무후무한 내가 현직자를 만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다 생각했다. '안 해본 일을 하러 온 거 아니었나?'


 본격적인 미션 수행에 앞서 나는 미국의 hiring manager가 무엇인지에 대해 조사하는 업무를 받았다. 미국의 채용 프로세스는 어떻게 되는지, hiring manager는 누구이고 어떤 권한이 있는지. 그러다보니 미국은 링크드인이라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력을 어필할 수 있다는 것과 인사팀이 아닌 hiring manager가 직접 함께 일할 사람을 고른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굉장히 새로운 시각이었다. 채용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지고 나니 조금 자신감이 붙었다.


 이후엔 한인 커뮤니티며 인스타그램이며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현직자 분을 찾았다. 열 분께 메시지를 드려서 한 분만 답장을 주셔도, 설령 그게 거절의 답장이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정성이 통했는지 한 분께서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대망의 첫 인터뷰를 무사히 마치고 비로소 인터뷰 스크립트를 완성했다. 근무한 지 딱 한 달 차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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