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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letterpot Nov 30. 2021

성난 물소 놓아주기

Listen to your mind

외출할 때 깜빡하고 이어폰을 두고 나오면 당장 편의점에서 저렴한 이어폰이라도 구매해야 했을 만큼 노래 듣는 것을 좋아했다. 봄에는 델리스파이스의 고백, 여름에는 콜드플레이Coldplay의 파라다이스Paradise, 가을에는 롤러코스터의 습관, 겨울에는 비Bee의 스틸 어 로즈Still a rose를 들으며 계절 사이사이를 걸어 다녔다(그러니까 장르 불문 다 듣는 막귀였다는 말이다). 고등학교 때는 학원을 다닌다고 받은 학원비로 mp3를 샀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항상 내 귀에는 음악이 흘렀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노래를 듣지 않게 되었다. 문득 너무 시끄러웠다. 노래를 틀지 않아도 어떤 이야기가 계속 들린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다. 쉬지 않고 랜덤 재생되는 멜론 플레이리스트처럼 이야기는 끊임이 없었다. 내 머릿속에서 말하는 이야기였다. 그 목소리는 때론 걱정을 하고, 때론 계획을 세우고, 때론 질문을 하며 혼자 대답도 했다. 아침에 눈을 떠 잠이 들기 직전까지 쉬지 않고 떠들었다. 명상을 했기에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인지, 목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명상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명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나의 명상은 엉덩이였다. 엉덩이는 한 덩어리 같지만 사실은 두 쪽이다. 양쪽 엉덩이가 모두 바닥에 닿아있는 것을 느끼는 것이 명상의 시작이고, 가운데였으며, 끝이었다. 엉덩이 무겁게 자리에 앉아 있어도, 내 마음은 한없이 가벼운 깃털처럼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그 마음을 몸이 있는 이곳으로 데리고 오려고 할 때에만 잠시 목소리가 잠잠해졌다. 사방이 고요해지고, 나는 고요함 안에 조심스레 머물렀다. 잡혀왔던 마음이 언제나 빠르게 달아났기에 그보다 더 조심스러웠다. 


특별히 걱정되는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이 아닐 때도 목소리는 늘 어떤 이야기를 지어내고, 그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틈만 나면 나는 마음을 잡으러 다니고, 목소리를 끄기 위해 애썼다. 어떤 날은 잘 되다가, 또 어떤 날은 딴생각만 주야장천 하며 앉아 있었다. 그때 나에게 명상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에서 다시 노래도 듣고 싶고, 무엇보다 평온해지고 싶었다. 


그러다 읽게 된 책이 아잔 브라흐마 스님의 <성난 물소 놓아주기>였다. 그는 분주히 날뛰는 나의 마음을 '물소 마음'이라 말했다. 내 마음의 물소는 명상도 더 잘하고 싶고, 더 고요해지고 싶고, 목소리를 끄고자 애쓰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리저리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물소는 아주 힘이 세기 때문에 물소를 묶어두려고 하거나 통제하려고 하는 한 나는 계속 끌려다니고, 결국 다치게 될 터였다. 스님은 마음의 물소를 잡고 있는 줄을 놓아버리라고 하셨다. 내가 할 일은 마음을 잡으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목소리를 끄는 것도 아니고 그냥 줄을 놓으면 되는 거였다. 




그전까지 한 번도 나는 목소리가 하는 말에 따뜻하게 귀 기울여 본 적이 없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듯이 그에게 내 시간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언제나 목소리는 내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것이었고, 사라져야 할 잡생각에 불과했다. 그래서 처음 목소리에게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라고 묻자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에게 보이는 관심을 불편해하며 주의를 돌리려 했다. 습관처럼 물소를 내 옆에서 걷게 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두고, 나는 그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게 두었다. 그리고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목소리는 늘 그랬듯 돌아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몸의 이야기를 하고, 마음의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나를 걱정했으며, 지키고 싶어 했다. 나는 가만히 들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렇구나' 말해주었다. 그렇구나, 내가 허리가 아픈 것이 걱정이구나. 그렇구나, 이게 아니면 어쩌지 걱정이구나. 그렇구나, 어제 그 일로 상처 받을까 걱정이구나 그렇구나, 그렇구나..




어느덧 목소리와 나 사이에 편안한 침묵의 공간이 생겼다. 우리 사이 침묵은 이제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게 되었다. 내가 줄을 잡고 있을 때는 물소가 날뛰면 함께 끄달려갔다. 그가 진정하는 데에도 훨씬 오래 걸리고, 진정이 되었다 하더라도 나는 이미 만신창이일 때가 많았다. 마음의 물소를 다룰 줄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언제라도 물소가 날뛰면 줄을 놓으면 된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 그는 얼마간 내달리다가 잠잠해진다. 멈추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그가 어디로 가는지 바라보고, 기다려주는 것이 전부였다.


여전히 콜드플레이와 롤러코스터를 좋아하지만 예전만큼 노래를 듣지 않게 되었다. 대신 더 자주 몸이 하는 말을 듣는다. 마음이 던지는 질문에 늦지 않게 대답한다. 목소리가 사라지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와 함께 머무르며 숨을 쉰다. 

지금 당신의 물소는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라. 모든 것을 통제하려 꽉 움켜쥐고 있지는 않은지, 너무 많은 생각에 끌려 다니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라. 그리고 놓아주라. 마음의 물소가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저 엉덩이를 무겁게 바닥에 내리고 앉아 기다리면, 물소는 돌아온다. 당신은 편안해질 것이고, 그와 함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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