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갉아먹고 있던 주범은 사실 내 안에 있었다
"우리같이 키 작은 애들은 이런 거 잘 안 어울리잖아."
재잘재잘 거리던 내 입이 친구의 한마디에 일순간 멈춘다.
아니 나같이 도 아니고 우리 같이 라니. 나를 낮춤으로써 상대를 공격하는 상위 기술이다.
쟨 뭔데 내가 이런 옷이랑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를 판단해?
"너는 집에만 있으니까 게을러지는 거야. 한심하다, 한심해."
아빠 시대에나 매일같이 챗바퀴 돌듯 일만 하고 사는 거야. 이게 정상이라고.
"네가 연애를 안 해서 그래."
연애 만능주의 시대에 연애를 안 하는 내가 죄인이다, 죄인이야.
말은 뱉어진 순간 공기 중으로 퍼져서 일순간 주위 사람들을 감염시킨다.
나쁜 바이러스처럼 나쁜 말은 쉽게 사람을 망가뜨린다.
그래서 나도 내 자존감에 위협을 가하는 인물들을 멀리하기로 했다.
안 만나니 마음이 편했다.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들 곁에 있기로 했다.
그러다 이따금씩 그 사람들의 나쁜 말들이 자꾸 떠올랐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끙끙대는 소심쟁이 타입에겐 나쁜 말을 차단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더라.
"우리같이 키 작은 애들은 이런 거 잘 안 어울리잖아."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스타일 안 어울린다고.
"너는 집에만 있으니까 게을러지는 거야."
나도 알아. 나도 내가 한심해.
"네가 연애를 안 해서 그래."
음, 이건 모르겠지만 안 해서 그런 건가?
나는 그 사람들의 나쁜 말에 동조를 하고 있었고,
어느새 나도 그 사람들이 되어 나에게 나쁜 말을 하고 있더라.
자존감 도둑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사실 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