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인 Mar 24. 2019

자존감 도둑

나를 갉아먹고 있던 주범은 사실 내 안에 있었다

"우리같이 키 작은 애들은 이런 거 잘 안 어울리잖아."

재잘재잘 거리던 내 입이 친구의 한마디에 일순간 멈춘다.

아니 나같이 도 아니고 우리 같이 라니. 나를 낮춤으로써 상대를 공격하는 상위 기술이다.

쟨 뭔데 내가 이런 옷이랑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를 판단해?


"너는 집에만 있으니까 게을러지는 거야. 한심하다, 한심해."

아빠 시대에나 매일같이 챗바퀴 돌듯 일만 하고 사는 거야. 이게 정상이라고.


"네가 연애를 안 해서 그래."

연애 만능주의 시대에 연애를 안 하는 내가 죄인이다, 죄인이야.



말은 뱉어진 순간 공기 중으로 퍼져서 일순간 주위 사람들을 감염시킨다.

나쁜 바이러스처럼 나쁜 말은 쉽게 사람을 망가뜨린다. 


그래서 나도 내 자존감에 위협을 가하는 인물들을 멀리하기로 했다. 

안 만나니 마음이 편했다.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들 곁에 있기로 했다.

그러다 이따금씩 그 사람들의 나쁜 말들이 자꾸 떠올랐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끙끙대는 소심쟁이 타입에겐 나쁜 말을 차단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더라.

"우리같이 키 작은 애들은 이런 거 잘 안 어울리잖아."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스타일 안 어울린다고.


"너는 집에만 있으니까 게을러지는 거야." 

나도 알아. 나도 내가 한심해.


"네가 연애를 안 해서 그래." 

음, 이건 모르겠지만 안 해서 그런 건가?


나는 그 사람들의 나쁜 말에 동조를 하고 있었고, 

어느새 나도 그 사람들이 되어 나에게 나쁜 말을 하고 있더라.

자존감 도둑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사실 안에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별을 잡던 그 소년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