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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Aug 27. 2020

취준, 나를 잃어가는 과정

졸업식을 앞둔 한 취준생의 생각들


8월 26일, 한 번뿐인 대학 졸업식 날이다. 두 번의 휴학과 두 번의 복학, 한 번의 졸업 유예. 만 5년 반의 대학 생활이 종지부를 찍었다. 사실 난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코로나 19로 인해 수도권 대부분의 대학들이 졸업식을 연기하거나 온라인 졸업식을 열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역시 2월 한 차례 졸업식을 연기하고, 내가 졸업하는 8월엔 온라인 졸업식을 열었다. 오늘이 졸업식 날짜 인지도 사실 얼마 전에 알았다.

뉴 노멀의 시대. 졸업식이 온라인인 건 이제 놀랄 거리도 못 된다.


온라인 졸업식을 보지 않은 건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자의는 온라인 졸업식에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타의는 오늘 한 방송사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작년 마지막 학기를 다니며 준비했던 방송사 공채는 세 번의 서류 전형을 통과했다. 이후 코로나 19와 방송국 적자가 이어지면서 방송사 공채가 오랜 시간 가뭄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세 방송사 공채가 떴다. 그나마 하나만 드라마 프로듀서를 선발했다. 나는 나머지 두 곳에 교양 프로듀서 지원서를 냈다. 얼마 전 기다리던 드라마 피디 서류에서 고배를 마셨고, 교양 피디 서류를 또 하나 떨어졌다.




드라마는 작년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던 곳이라 이번에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었다. 그래도 하나만 남은 드라마 피디 채용에서 떨어진 터라 마음이 쉽게 잡히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 오늘 시사 교양 피디 채용마저도 떨어졌다. 드라마 위주로 준비했던 시험이라 이 역시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연속해온 '죄송하게도 이번 채용에서는 귀하를 모시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라는 문구는 나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사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그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나를 어떻게 다듬고 꾸며야 그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자소서 속의 나는 계속해서 변했다. 전자 회사에 자소서를 쓸 때는 '세계적인 전자 회사로 도약할 수 있게 힘쓰겠다'라고 했다가, 홍보 회사에 자소서를 쓸 때는 '홍보맨으로서 이 회사의 브랜드를 알리겠다'라고 했다가, 방송사에 서류를 넣을 땐 '오랫동안 꿈꿔왔던 꿈을 펼치겠다'라고 한다. 뭐가 진짜 나와 가까운지 모르겠다.


나는 분명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세상에 궁금한 것이 많은 청년이다. 사람들에게 물을 질문이 머릿속에 가득한 인간이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새는 잘 모르겠다. 나를 수식하는 문장들이 정말 나인지 모르겠고, 내가 꿈꿔오던 미래가 이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한 회사에서 떨어질 때마다 내가 여기까지 달려왔던 시간들이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단순히 자존감이 떨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다. 취준은 내가 지금껏 쌓아왔던 나를 부시고 사회에 맞는 또 다른 나를 만드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온전한 나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아빠가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어. 너도 곧 성인이니까 너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 열아홉의 난 자신감이 넘쳤다. 이런 말을 한 아빠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겠다는 각오가 단단했다.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대학에 왔다. 4년 간의 학교 생활에 나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스물다섯의 나. 돌아보면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이룬 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다. 내 손에 쥐어진 게 아무것도 없을 때의 허탈함이란.



요즘 내 상황을 비유해보면 이렇다.

나는 유인원이다. 오늘 친구들과 함께 사냥을 나갔다. 친구들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멧돼지를 잡아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저녁을 즐긴다. 채식을 하는 친구는 탐스럽게 익은 과일을 바구니에 한가득 담아 자신만의 식사를 완성했다. 나는 돼지도 과일도 없는 빈 식탁에서 굶주리는 중이다.


아니면 진부하겠지만 내가 드라마 속 주인공이라면 어떨까 상상해봤다. 드라마 1부 중간 즈음, 그러니까 아직 남주도 만나지 못한 주인공이  스쳐 지나가는 남자 1에게 차였을 때라고 위안 삼는 중이다. 너무 외로워서, 아니면 자존감이 떨어져서 좋아하지도 않은 남자에게 고백했다 거세게 차인 상황. 사실은 조금 좋아했다고 하면 더 힘드니까 "어차피 걔 그렇게 맘에 들지도 않았어. 세상에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라고 위안하는 중이다.




친구들의 졸업 사진이 속속 인스타에 올라오고 있다. 좋아요를 누르면서 그들의 인생이 좋아 보인다는 생각을 한다. 내 인생도 언젠가 좋아지는 날이 오겠지. 내일은 또 어떤 나를 만들어 보여야 할까. 나는 나를 하나씩 잃어가며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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